▲ 김 명 환 목사
누구나 인생의 최후를 맞이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게 살았느냐(?)는 것에 대해서 묻는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냈느냐(?)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며, 그리스도의 빛을 가렸느냐(?)는 것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의 뒤안길을 뒤돌아보면, 후회되는 일,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들과 자랑스럽고 기쁜 일들이 자신의 뇌리를 스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떠난 자리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삶도 얼마나 보람 있는 삶을 살 것이냐는 것이다. 특히 세밑에 많은 사람들은 보람 있는 새해를 희망하며, 설계하고 꿈을 꾼다. ‘값진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새해에는 그렇게 살겠다는 인생의 계획을 세운다.

지난 한해 기독교인들은 값진 삶을 살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기독교인들이 떠난 자리에 기독교인의 냄새가 그대로 배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며, 기독교인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한해 기독교인들의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 있었으며, 세월호 참사로 인해 슬픔에 잠긴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했다. 오히려 이들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물론, 이들의 집단행동이 국가발전과 교회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하지를 못했다. 또한 세월호참사로 인해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향해, “국민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에서, 슬픔에 함께 나누지를 못했다. 오히려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기독교인들이 떠난 자리는 이 땅의 소외당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빛과 소금의 맛이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교회에 대한 걱정만을 주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교회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고, 교회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부자들의 교회로 변질되어 갔다. 그렇다고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예수님의 빛과 소금의 맛을 드러냈다. 이것은 아직도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생활현장에서 실천하는 자들을 말한다. 우리는 이들은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삶에는 빛과 소금의 맛이 그대로 나타난다. 예수님의 빛과 소금의 맛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랜 시간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현장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속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성서에서 예수님처럼 향기로운 자가 없었다. 그분이 인성을 가지고 사시는 땅위의 삶은 부자도 아니요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니다. 멋있는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이들을 위해서 사셨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 기독교인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느냐(?)는 것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개신교의 교인들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한 나머지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향해 비난하기 시작했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교회와 교인들을 뒤로하고, 교회를 떠나기 교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교회는, 오히려 국민들이 걱정하는 종교단체로 변질되었다.

기독교인 모두는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동안 갈리리를 중심으로 펼쳤던 희망의 교회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한국교회는 선교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인천갈릴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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