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성서는 위축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가 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안식을 가로막는 모든 인간들과 모든 정치, 종교체제에 대해서 저항하고, 안식일이 이들을 위해서 있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 당시, 안식일 법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율법적인 강제규범이 돼, 고달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악법이었다. 한마디로 안식일 법의 기본정신이 무시되고, 안식일 법을 강제규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안식일에는 노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하루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날품팔이꾼들은 안식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목사, 창녀, 배꾼들은 직업 때문에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굶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죄인이었으며, 사회, 정치, 율법적으로 멸시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보호하기 위한 안식일법이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사회적으로 소외시켰던 것이다. 휴식 없이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시키기 위해 제정된 것이 안식일 법이다.

한마디로 안식일 법은 하루를 고달프게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삶을 가져다가 주기 위한 것이었다. 억압과 수탈, 증오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주인과 종이 서로 화해하는 하나님의 안식을 가르치고, 증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때문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안식을 누구도 박탈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법이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위축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올가 매는 악법으로 이용됐다. 그것은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돈 많은 사장님께서 교회를 가지 위해 주일날 운전기사를 불러내는 것이나, 기독교기업인이 주일날 사업장의 기계를 돌려, 노동자의 안식을 박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즉 나쁜 기업가나, 못된 주인을 만나면, 힘없고, 빽없는 노동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휴식 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기독교 기업가들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도, 노동자들의 생명의 기쁨과 평화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7일째 되는 날 안식을 취하셨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기쁨과 생명이 가득한 안식이었다. 이 안식은 창조의 완성이며, 인류역사의 목적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갈등과 대립도 없으며, 오직 평화로운 안식뿐이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자신의 안식을 약속한 것도 이 때문이다.(히브리서 3-4장)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나라는 간난하고 병든자, 정치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이다. 그러기에 오늘 한국교회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추위에 떠는 사람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버림을 받은 아이 △슬픔과 좌절의 어둠에 싸인 이웃 △외로움에 빠진 이웃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정박아, 등등에게 하나님의 안식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새로운 미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케 해야 한다.

인천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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