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지난 25일 네팔 수도 카트만드에서 일어난 대지진. 카트만드 시내는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로 인해 말 그대로 참담했다. 여기에다 사망자 4000명을 넘어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또한 카트만드는 죽은 자의 무덤으로 되었다.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집과 가족을 잃고 거리로 나온 카트만드 시민들은 하늘을 원망하며, 한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누가 이들의 이웃인가(?)

세계 여러나라가 카트만드 대지진으로 인해 희생된 희생자와, 가족과 집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네팔의 카트만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구호물자와 긴급구호단을 파견하고 있지만, 이들의 피해에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나라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한국교회봉사단, 월드디아코리아 등의 단체서 지진으로 고난당하는 네팔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리정부도 우선 100만달러를 네팔에 보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네팔 구호는 일본 동부해안에 몰아닥친 쓰라미사건 때와 대조를 이룬다. 당시 우리정부를 비롯한 국내의 기업들은 앞을 다투어 쓰나미로 고난을 당하는 일본인들을 적극 후원했다. 그 액수는 우리국민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것은 일본과의 경제적인 협력관계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고난당하는 제3세계 국민들을 향한 사랑은 왜 이리도 인색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쓰라미로 피해를 당한 일본국민들을 한국교회가 수용하는 방안을 내놓을 정도로 매우 적극적 이었다. 모금운동도 여러 각도에서 활발하게 진행했다. 그러나 부자나라인 일본은 한국국민의 인도적인 지원과 무조건적인 지원에 감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의 기업과 정부, 그리고 국민들이 일본 동부해안에 몰아닥친 쓰나미 피해주민들에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를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벌인 반면, 가난한 이웃나라의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왜 이리도 미온적일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비롯한 한국교회봉사단, 월드디아코리아 등 단체가 네팔 지진피해이재민돕기운동을 펼치고, 긴급구호팀을 현지에 파견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 동부해안지역에 몰아닥친 쓰나미 피해주민돕기에 비하면 매우 미흡하다.

문제는 지구 곳곳에서 이와 같은 자연재해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자연재해가 왜 가난한 나라에 집중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자연재해 역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 바로 재앙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네팔국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왜 하필 재앙이 가난하고, 힘없는 네팔 카트만드에서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고난당하는 네팔 국민들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성서의 기록으로 네팔국민들을 위로하고, 예수님께서 질문하신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하게 대답해야 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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