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소중한 피존물이다. 때문에 거룩하고, 존엄한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털끝 하나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최근 어느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독극물에 의한 집단 살해사건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를 안는다. 무엇보다도 같은 동네에 살고, 함께 생활하던 할머니가 가해자라니 여기에 동의 할 수가 없다. 경찰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생존한 할머니를 가해자로 지목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해하기 힘든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집단자살 등 자신의 목숨을 쉽게 버리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이 갈수록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아니 상사의 언어폭행, 성적비관, 사회 부적응, 갑작스런 충동,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이들 모두가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중 상당수는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의 삶은 그리 넉넉하지를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최후에 선택한 것이 바로 자살일 것이다. 주변사람 아니 이웃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생명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거룩한 것이요, 존엄하다. 그래서 수명을 다하고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축제라고 말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세상에 오고 싶어서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났다. 그래서 명을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웃을 섬기고, 나누고, 사랑하라고 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 이웃과 하나님을 향한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리고 나눔은 성서가 말하는 경제정의이다.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우리 속담에 “콩 한 알이라도 나누어 먹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분명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하늘의 뜻 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글들은 성서 곳곳에서 나타난다. 예수님의 나눔, 오병이어의 기적, 구약성서에 나타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일이 없도록 모퉁이의 곡식이나, 이삭을 줍지 못하도록 한 하나님의 뜻 등등은 성서의 경제정의이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누고, 사랑해야 할 피조물 모두는 이웃이다. 오늘 우리사회에서 이웃이란 단어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싶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네 아우 아벨이, 아니 네 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있다.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우리사회에 팽배하게 나타나면서, 우리에게 이웃은 없다. 고난의 삶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 몰리고 있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주검으로 발견되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고, 모텔에서 집단자살하고, 이웃을 죽이고 있다.

이것은 분명 성서에 나타난 경제정의인 나눔과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지를 않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한 나머지 이웃을 잃어버린 결과가 가져온 타살이다.

인천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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