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작금 제 100회 총회를 마치고 나서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미래다.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사는 것 같은데 찬양의 축제는 넘치는데, 정작 변화되어야 할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회가 문화라는 이름 속에 세상의 물질문명의 맘몬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에 이르렀다. 하비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세상을 버린다”고 했다. 얼마나 무서운 애기인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또 제100회 총회를 맞은 장로교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영국이 낳은 최대의 설교가가 존 웨슬리라고 한다면, 미국이 낳은 최대의 전도설교자는 D.L무디를 꼽을 수 있다. 존 웨슬리는 최고의 지성을 겸비한 전도 설교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무디는 학교라고 하는 곳은 다니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19세기 가장 위대한 부흥전도 설교가였다. 웨슬레와 힛필드 이후로 전도에 가장 많은 열매를 맺는 사역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에게는 특별한 은사나 능력이 없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전하고,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여기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으켰다. 주를 위해 말하고 주를 위해 기도하고 주를 위해 살려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 간 것이다.

문법에 맞지 않는 설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의 설교는 미국과 영국을 휩쓸며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회심하게 하는 그 능력을 일으켰다. 이 능력은 어디서 왔을까? 무디의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강한 힘에서 왔던 것이다. 성령을 주님으로 모시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가을에 무디를 다시금 생각하는 지성이 되어보자. 십자가를 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주님의 뜻을 저울질 하지 말자. 빌라도는 마태복음 7장 22절에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라고 민중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저주의 상징 인물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칠 때 아내에게 묻지 않았다. 이웃이나 친구와 상담하지 않았다. 묻지 말고 드리자! 하나님의 음성 듣고 즉시 순종했다. 사도바울도 개종 후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었다. 사무엘상 6장 16절에 나오는 법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말없이 올라갔던 소를 기억하자.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산상에 올라가셨다. 십자가 질 때는 누구에게도 묻지를 말자!

둘째, 총회를 위해서도 내 십자가는 내가 져야한다. 한 신임총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총회 100년 역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 그리고 미래 100년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부조리 청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을 했다. 과연 한국교회 장자 교단의 위상을 추락시킨 납골당 문제 등을 잘 해결하고 불신앙을 제거할 것인가를 주목하여 볼 일이다. 신임 인사차 하는 하나의 구호가 아닌 실천하는 총회장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300여개의 교단의 총회장들은 총회를 위해서도 십자가를 져야한다. 총회의 구성원 모두는 사사로운 학연 지연 등을 배제하고 총회장이 스스로 개혁을 과감하게 단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셋째, 억지로 져도 복이되는 십자가. 예수님은 십자가를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시다가 쓰러지셨다. 이때 백부장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심자가를 대신지게 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는 구레네 자손들이 훌륭한 교회의 일꾼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했다.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를 바로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보자!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가을에 최대의 지성을 가져보자.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감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감사는 모든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은 축복의 문을 닫는 자물쇠와 같기 때문이다. 노회도 교회도 총회도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국교회도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메고, 그 길을 따라가자.

군남반석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