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욱 목사
말이 열매를 만든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왕이 한 광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오게 하고, 또 다른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찾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두 광대가 각각 구해온 것을 상자에 담아 왕에게 바쳤다.

첫째 광대의 상자에선 사람의 혀가 나왔다. 두 번째 광대의 상자를 풀었더니 거기에서도 사람의 혀가 나왔다. 혀는 이 세상에서 아주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아주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음을 가르쳐주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말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초대교회도 한 입 가지고 두말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인들 간 큰 혼란이 일어났다. 야고보 사도는 성도 간의 생활에 제일 중요한 부분이 말이라고 판단했다.

말이란 말을 움직이는 재갈과 같고, 배를 움직이는 키와 같으며, 나무를 불태우는 불과 같다. 혀는 사람이 길들일 수 없지만 하나님은 길들일 수 있다. 야고보 사도는 말이 삶을 만들기 때문에 성령 받아 은혜의 말, 복된 말을 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0-11)는 말은 인생의 열매가 되고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부정적인 말을 버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굵고 짧게’라는 표어를 갖고 살다 그가 말한 대로 40대에 세상을 떠났다. 부정적인 말, 비난의 말은 살인과 죽음을 불러올 수 있다.

말이 인생을 좌우한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권면대로 기도하고 성령충만 받아 믿음의 말을 함으로써 교회가 하나 됐다. 믿음의 말, 소망의 말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역사를 불러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칼 융은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를 운명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미국 위스콘신의 한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하루 2-3차례 언어치료법을 시행했다. 당뇨병 환자라면 “내 혈당치가 정상이 되고 있다”고 반복해서 10분 정도 말하는 식이다. 이 병원에서 말기암 환자에게 언어치료법을 적용했더니 3주 후 암이 사라졌다는 임상보고가 나왔다. 예수님도 모든 병자를 말씀으로 고치시지 않았는가. 다만 그 말의 권세를 얼마만큼 믿는가에 달려 있기에 치료 가능한 사람도 있고, 불가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의 속담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을 뱉는 것을 쉽게 생각하며 다 안다고 자만하기까지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주셨다”는 것을 어떤 학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 만큼 말이란 것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말은 사랑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랑은 말로 표현되고, 말로 이뤄지고 전해진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아주 쉽다. 예컨대 상대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 왔을 때 “힘드셨죠 당신을 위해 기도했어요” 또는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당신이 고마워요”라며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며 감동이 돼 두 사람을 끈끈하게 연결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말에는 진실을 담고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심과 마음이 담기지 않은 입술의 말은 기만하는 말이요, 듣는 이를 불쾌하게 하는 말이다. 진실과 마음을 담아 말할 때 우리의 말은 생명력을 갖고,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동시에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초대교회는 인생이 말대로 된다는 야고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믿음의 말, 복된 말을 했다. 우리도 말이 인생의 열매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복된 말, 좋은 말만 하면서 살아야 한다.

예장 백석 사무총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