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열 목사
어느덧 봄을 알리는 3월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3월은 3.1대한독립만세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인은 국경이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조국이 분명한 삶을 요구한다. 모세는 그 민족을 지키기 위하여 사명을 다할 때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로 삼고 출애굽의 장엄한 역사를 일으키셨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 시키는 데는 예수님에게서 배워야한다. 예수님은 민족의 멸망을 보고 통곡하면서 우신 적이 있다.

일제 36년의 압박 속에서 그리고 지금도 독도문제 정신대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민족의 문제가 이 땅에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식민지로 나라를 빼앗고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행위를 지금도 자행하고 있다. 아무리 정치적 이익을 노린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3.1운동의 유관순 대한독립운동 만세의 소리가 지금도 들려온다. 3월을 맞이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현실을 즉시해 보자. 민족대표 33인중 기독교인이 16명이라고 자랑만 하지 말고, 그날의 정신으로 살려야한다. 이들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일경이 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당시 3.1운동은 유관순열사와 같은 힘없는 여성과 유리방황하던 유랑민, 그리고 혈기 넘치는 학생들이 주체가 되었다. 3.1대한독립만세운동은 전국의 교회와 피압박민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가난한 백성들이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희생을 당했다. 희생을 당한 대부분은 여성과 농업농민, 어린이었다.

3.1독립선언문은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의 대표가 태화관에서 모여 한용운의 취지 설명이 있었고, 천도교가 경영하는 보성사에서 인쇄되어 전국으로 배포되었다.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은 피압박민족에 나라의 독립에 대한 큰 희망을 준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하지만 3.1운동의 주체가 힘없는 여성과 유리방황하던 유랑민, 그리고 혈기 넘치는 학생, 농업농민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

오늘 우리민족의 흥망성쇠는 국민 모두가 처한 위치에서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고려 충렬왕 때 개성 진고개에 훈장을 달고 다니는 개가 있었다. 충렬왕 8년에 장티푸스로 부모를 잃은 눈 먼 아이가 흰 개와 같이 살고 있었다. 끼니때가 되면 이 개는 아이게게 꼬리를 잡혀 문전걸식을 하게 됐는데, 아무리 제배가 고파도 아이가 얻은 밥에 입을 댄 일이 없었다. 아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우물가에 데리고 가서 물을 먹이곤 했다. 이 소문을 들을 조정에서는 정이품의 상을 내려 개의 충성을 기렸다. 이 개는 품직을 새긴 목패를 달고 다녔으며, 사람들도 이 개를 보면 걸음을 멈추고 예를 표했다고 한다.

사람이 개 같은 짓을 하면 개 같은 놈이라고 한다. 사람이 개만도 못하면 개만도 못하는 놈이라고 한다. 오늘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얼핏 하면 사회법정에 교회문제로 고소하고, 명의 이익 때문에 고소하고, 때론 무고한 사람을 죄로 덮어 씌우고, 사랑도 희생도 용서도 없는 기독교 간판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기독교인은 고사하고 한 인간으로서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하나님이 책망하시지는 않을까? 윤동주의 서시를 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받는 기독교에서 존경받고 칭찬 듣는 기독교의 원년이 3.1절과 더불어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과 행동에 믿음과 신뢰가 가득한 사랑과 존경받는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이 되어보자. 민족의 가슴에 기독교를 심자.

 

군남반석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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