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가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가복음 2장 16절, 마태복음 11장 19절, 누가복음 7장 34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죄인(세리, 병든자, 가난한자, 소외된자, 여인)들과 음식을 먹는 장면을 많이 보도하고 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는데 왜 단식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 “잔치 집에 온 신랑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어떻게 단식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이것은 예수님의 운동 자체가 생명공동체운동이었음을 대변하는 말이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들고, 억눌린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며, 공동체적인 삶을 살은 것처럼 묘사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라고 비난을 당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어울린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혁명적이었다. 율법주의자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분명 이것은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장벽, 정치적인 장벽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당시 세리들은 민족적인 원수의 앞잡이들이었고, 죄인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팔레스티나의 고난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로마와 예루살렘 성전 체제로부터 이중적 수탈을 당해만 했다. 로마의 수탈은 간접적이고, 주변적이었다. 반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수탈은 유대인의 삶을 지배했다. 사제 특권층은 로마세력과 야합했다. 그러나 바리새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대인은 반로마적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자였다.

성전체제의 이념적 대변자인 바리새파 사람들에 의하면, 세리는 민족 반역자로서 체제 밖에 있었다. 예수님은 성전체제의 핵심인 예루살렘 성전과 이 체제를 정당화하는 바리새파적 율법 해석을 일차적 공격목표로 삼았다.

고난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온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예수는, 민족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었던 세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에서 세리와 밥을 먹으며 어울린다는 것은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장벽을 뛰어 넘는 화해의 제스처였다. 민족적, 정치적으로 친구, 원수의 관계를 예수님은 깨뜨리고,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은 복잡한 안식일 법과 까다로운 정결 법을 지킬 수 없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 취급을 받았다.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무시하고, 죄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어울린 예수님은 한마디로 성전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그리고 혁명적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런 행동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삼았던 것이다.

박재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에서,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밥을 나누고, 잔치를 벌인 것은 종교적인 권위를 빌어서 지배하고 수탈하는 예루살렘 체제를 거부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예수님은 밥만을 나누어 먹은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까지 하나가 되어 삶 전체를 함께 나누었다. 사회적, 종교적인 두꺼운 벽을 깨뜨렸다. 삶 전체, 존재 자체를 함께 나누었다. 밥을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은 철저히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연대를 나타내는 행동이며, 상징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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