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곤 목사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부활절을 앞두고 사순절 분위기에 접어든다. 사순절은 영어로 ‘Lent’이다. 이는 만물의 소생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이자,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요한 3:16)을 의미하는 것이다. 3월 중순에 접어든 지금 사순절 기간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3월 27일이 부활절이니 채 며칠이 남지 않았다.

신실한 성도들은 사순절 기간 내내 보다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즐기는 여행이나 취미생활까지 자제하며 근신한다. 끝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말로나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은혜를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성경을 애독하고 기도에 열중하며 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에 열과 성을 쏟는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인 고난 주간에는 외출을 삼가고 금식하는가 하면 그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비뚤어진 삶을 회개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곤 한다. 두발과 양손에 못 박히고 가시관을 쓰시고 창에 찔려 피한방울 남김없이 쏟아주신 주님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볼 때 부활절을 앞 둔 사순절과 고난주간은 성도들이 스스로 자기 신앙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자정기간이다. 세상 유혹에 이끌려 조금은 흔들리는 신앙을 다잡기도 하고 식어져가는 기도 열에 불을 댕기는 축복의 기회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자 상징이다. 그리고 하나님 사랑의 극치이며 인류 구원의 발현이다. 극형의 형벌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절규와 피 흘림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부활로 승리케 한 우주적 거룩한 신비다.

기독교는 골고다에서 십자가 사건 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순교의 피를 뿌리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역동적인 생명력으로 성장했다.

주후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그의 동료 황제 라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목적은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예배하는 것”이라는 선언 이후 모든 민족들에 복음의 진리가 들어가 개화되면서 인지의 발달과 선진 문화 문명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세계 역사의 중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오랜 평화와 안일 속에 신자본주의 물질문명과 눈부시게 발달하는 과학문명이 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물질만능주의로 세속화되면서 성장성공주의, 일등주의, 명예, 교권, 유명주의 같은 인본주의가 쓰나미처럼 밀려온 것이다.

이 세대는 십자가의 진리에 흥미를 잃었다. 이제 십자가는 목걸이, 악세사리, 장신구, 교회 종탑의 의미 정도로 약화 퇴색되었다. 죄, 회개, 섬김, 희생, 헌신, 자기 부인의 메시지는 부담을 느껴서 이 교회 저 교회로 설교 쇼핑을 다니는 쇼핑객이 늘고 있다.

강단에서 축복이나 풍성하게 배급받고 평안과 위로, 치병과 만사형통의 현세적 설교만 요구한다. 세속화의 물결 속에 일등만을 찾게 되어 목회자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박사, 소담가를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십자가에 죽지 않고는 생명과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면 불신앙을 낳고 불신앙은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멀리하게 한다.
지금도 지구상의 곳곳에서는 지진, 기근, 온갖 재앙과 독재, 폭력, 테러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고통을 받고 있는데 나만 배부르고 평안하면 된다는 생각은 십자가의 고난 현장을 바로 보지 못하는 모습이다.

사순절의 막바지인 고난주간을 보내는 우리는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는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교회 또한 십자가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부활의 영광이 있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피 흘리심, 죽으심이 있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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