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광야금식기도를 하면서 세 번의 시험을 받으셨다.

첫 번째는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 세우시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 시험은 사단 앞에 절을 하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 4:3)” 하고 유혹했다.
굶주린 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빵이었다. 사실 육체를 가진 자들의 제 일차 관심사는 물질이다.
물질이 풍성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육제를 가진 인간은 물질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다.

물질을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대 땅의 곡창이라고 하는 갈릴리에 풍년이 계속된다고 해도, 여전히 빈곤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예수님은 보았다. 농민들은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열심히 지었으나, 그 땅의 농작물의 주인이 아니었다. 그 땅과 소출은 도시 기득권자들의 것이었다.

농민들은 도시 기득권자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많은 농민들이 쫓겨나 떠돌이가 되었다. 젊은이들은 열심당원이 아니면 강도떼가 되었다. 젊은 여성들은 웃음을 파는 여성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천시하는 세리가 되었다. 그리고 부정하다고 하는 수공업을 했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은 거지가 되어 거리를 방황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땅을 주셨는데, 이들은 땅에서 쫓겨나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요단 강가의 돌들이 떡이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고 대답하셨다.

성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도 사람이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삶의 축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따라야 참된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핵심은, 첫째 사람은 누구나 땅의 주인이란은 것이다. 누구나 땅을 소유하고 땅에서 나는 소출을 먹고, 땅에서 나는 것을 이용하여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에게 영생의 길을 물었던 율법학자가 말한 “네 마음을 다하고 내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라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여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 인정공동체를 이룩할 때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다윗 왕 이래로 유대나라의 기득권자들이 힘으로 자기 배만 채우면서 살았을 때 사회가 패망하는 것을 명확하게 보신 것이다. 이 탐욕이야 말로 바벨탑을 상징하는 첫 번째 악이다.

동시에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삶의 주인이 되어 평화와 사랑, 그리고 생명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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