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전국 방장곡곡 어디에도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은 없다. 슈퍼마켓만큼이나 교회당이 많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넘쳐나게 심어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건, 아니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교회다운 교회,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와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주지를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십자가탑은 동네마다 우뚝 솟아 있는데, 수천억씩 들여서 웅장하고, 호화로운 교회당은 있는데. 이를 “잘했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빚을 내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고, 빚을 갚지 못해 많은 교회당이 이단에 팔려 넘어가고 있다. 누가 이를 잘했다고 하겠는가.

여기에다 일부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호화로운 교회당이, 진짜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이래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외친다. 과연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함께 하실까(?) 전국의 수많은 철탑, 수천억원을 삼키면서 버티고 있는 교회당 건물에 예수님은 계실까(?) 예수님은 마구간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길을 헤매는데, 로마 군병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오늘 예수님은 어디에 계실까(?) 아니 어디로 오실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죽임을 당한 후, 그의 부인은 미국의 한 대학교 졸업식의 축사에서, 학생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면, 어디로 오실까요. 부유한 백인들의 교회로, 백악관으로 오실까요. 아니 할렘가. 가난과 범죄가 들끓고 인간의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그곳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외쳤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라. 호화로운 교회당은 부자들이 많은 곳에 세워지고, 교회는 부자들의 마음에 들게 치장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마구간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된다.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게 치장해야 한다”는 말은 궤변에 불과하다.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보면, 그리스도가 가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말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의문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성령을 도매금으로 방매하고, 복음을 헐값으로 뿌리며, 행동하지 않는 그곳에는 예수님은 계시지 않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맑고 깨끗한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충혈된 눈이나, 허위의식으로 가려워진 눈으로 그리스도가 있는 자리를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디로 가시는지를 알기 위해 역사의 흐르는 물줄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미세먼지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다툼의 소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소리를 구별해 낼 수가 없다. 분열과 다툼이 끊이지를 않는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행동하지 않는 교회, 행동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속에, 과연 예수님은 계실까(?) 하고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예민한 청각, 분열과 다툼의 현장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져야 한다.

오늘 교회는 그리스도가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머무는 곳,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고향을 떠나 유랑민이 되어 떠도는 떠돌이, 육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병신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이들을 섬겨야 한다. 그리스도는 이들 속에서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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