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5월1일은 어린이주일이며, 5일은 어린이날이다. 그런데 금년도 어린이주일에 어떤 주제로 설교를 해야 할까 하고 망설여진다. 그것은 5월 가정의 달과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어린이들의 존엄성과 가치가 부모 아니 어른들에 의해 짓밟히고, 부모에 의해, 아니 계모와 계부에 의해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학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매일매일 들려오기 때문이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색인종이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와 존엄성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부모의 이기와 어른들의 이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그러면서 우리사회는 봉건체제의 유물인 충효만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해야 할 어떤 제시도 없이, 단순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해야 할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우리사회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충효사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면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사회의 가치관은 생명의 존엄성과, 이웃과의 관계보다도, 재력과 권력에 바탕을 둔 부강만 외치고 있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은 출세를 위한 기회주의 교육에 길들여졌고, 아이들에 대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자유로이 뛰어놀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은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충효를 강요하기 전에 무엇이 아이들의 가치관을 흔들어 놓았고, 왜 아이들이 학대를 받으며,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것은 어른들이 부강만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충효를 강조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같은 사회를 성인폭력시대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성인은 충효의 대상이고 의무는 없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생님을 되겠다는 사람들이 수억원짜리 나무(?)를 심고, 강단에 설 수 있겠는가. 1948년 휴머니스트 카뮈가 파리의 도미니코 회원들에게 한 연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던져주고 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악을 미워한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과 함께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들이 괴로워하고 죽어가는 이 세상과 맞서서 싸우기를 결코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 추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피로 얼룩진 우리시대의 역사를 마주보는 것이다. 법도 없고 곳곳에서 지칠 줄 모르고 어린이들과 사람들을 위하여 몸을 내대고 있는 한줌의 사람들과 외침에 온 세상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수백만의 소리를 합해야 할 줄 안다”

이 내용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을 고발하고 있다. 성서에도 어린이들을 학대하고, 학살한 내용들이 있다. 피리오가 그랬고,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헤롯이 그랬다. 독재자들이 어린이 학살을 다반사로 여겼다. 이런 악행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명 오염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가치가 있다. 그들을 지키고 그들의 편이 되는데서 삶의 의미를 찾을 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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