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창세기 2장 26절-28절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 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땅에 퍼져서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까닭을 짐작하게 한다. 이 말씀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게 했다. 요즘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말하며, 동성애를 찬성하는 측과 이를 반대하는 측 사이에 논쟁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이 성경구절에 분명하게 나와 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살게 한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이다.

성서의 기록은 사람을 만든 까닭과 목표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데 있다고 했다. 그런데 권력자나, 전쟁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이나, 민족을 정복하는데 이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팽창주의와 식민주의, 지배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악이용해서 이웃나라와 약소국가를 침략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것이 2000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이 성경귀절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정당화 또는 합리화해 주는 것이 아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문명을 계발하고, 문화를 창조하고, 산업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자연을 함부로 다루었다. 한마디로 인간의 욕심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질의 오염 등 생태학적 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그 원인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결과이다. 한마디로 땅을 다스리는 권리를 잘못 이용해 피조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아니 몸살을 겪고 있다.

송기득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자신의 저서 <끝내 사람이고자>(1990년, 한길책방)에서 “‘땅을 다스리라’는 말은 세상의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이 땅에 인간의 구원을 실현하라는 명령으로 받아야 한다. 성서 전체가 인간구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라’는 것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이용한다면, 성서가르침에 대한 반역이다. 성서는 땅을 다스리라고 했지 지배하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섬기라고 했지 지배하라고 하지 않았다.--사람이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다. 동시에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송 교수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공동체를 이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람이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은 공동체를 이루는데 있다. 공동체의 기본적 원리는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데 있다. 이 때 사람은 주체적이고, 인격적이어야 한다. 이 공동체는 누구나 높여지고, 사람으로 받들어진다.

공동체는 가진 자의 횡포와 권력의 횡포가 있을 수 없다. 힘없고, 빽 없고, 가난한 사람 등 모두가 떳떳한 사람으로 높여지고 받들어진다. 한마디로 인간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사람을 노예화시키고, 짓밟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공동체의 형성이 결국 인간화의 실현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추구는 민족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행방의 실현과 보존이 법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그 법은 소외되고, 가난하고, 떠돌이,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지키는 하나님의 법으로 높여지게 되었다. 그것은 신명기법전을 살펴보면 알 수 있으며, 이것을 신명기 법정신이라고 말한다.

신명기 법정신에 의하면 사람을 억누르고 짓밟는 불의한 법은 불의한 법으로 몰아 저항의 대상이 되었다. 지배자가 불의를 저질렀을 때, 예언자들이 나타나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것은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억눌리고 짓밟혔던 당시를 생각해 불의한 법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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