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예수님은 “저 들꽃을 보라”고 했다. 인간의 본분을 일깨우는 말이다.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현대문명에서 깨어나려면, 예수님이 말한 들꽃에서 배워야 한다. 현대문명은 자연과 단절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자연을 파고하고 오염시킨다.

현대문명을 일으킨 과학과 기술 문명은 자연법칙의 일부를 응용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기술 문명은 자연을 파괴하고 적대시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자연과 인간의 화해 목소리는 매우 고무적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화해는 현대문명에 있어서 큰 과제이다.

무엇보다 인간은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앗시스의 프란시스는 해와 달, 새와 나무를 형제자매로 알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것, 자연과 합일에 이르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다.

또한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다른 피조물들을 돌보고 가꿀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평화로운 공동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이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 인간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의 또 하나의 본분이다.

푸른 잎은 자연과 생명계를 지탱해 주는 가장 기초적인 양식이다. 모든 초식동물은 풀잎을 먹소 산다. 모든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먹고 산다. 풀잎이 없으면, 모든 생물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모든 동물이 죽으면, 그 시체를 모든 풀잎의 양분으로 내어 준다. 이렇게 모든 생물은 서로 얽혀 있고, 한데 어우러져 살아간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짐으로써 자유롭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또한 푸른 잎사귀는 애욕에 물들지 않은 푸른 마음, 탐용과 집착의 고리를 끊는 영원한 진리의 세계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저 들 꽃을 보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어리석고, 쓸데없는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주어진 대로 그리고 생긴 대로 열심히 살라는 말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람은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고, 들꽃처럼 모든 힘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헛된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약한 생각을 떨치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저 들꽃을 보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집착과 번뇌를 내려놓고, 하나님나라의 의를 위해서 나서라는 부름이다. 여기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뒤따르며, 하나님의 인류구원에 대한 뜻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 에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길이 열린다. 인류의 구원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와 인류 사회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길이며, 인류 사회의 심오한 역사이다.(박재순 박사저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 중>)

타고르는 “푸른 잎사귀가 인간을 구원한다”고 했다. 타고르의 말은 인간구원의 결정적인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 십자가와 푸른 잎사귀가 결합될 때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있다. 십자가는 구원의 중심적인 표적이다. 푸른 잎사귀는 구원을 위한 부수적인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저 들꽃을 보라”고 한다.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어리석은 미움과 불신 속에 사는 우리에게. 근심과 걱정, 그리고 미움과 불신을 떨쳐버리고, 저 들꽃처럼 자유롭고 진실하게 살라고 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