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교회에 당면한 과제 중 최우선적으로 역량을 집중해야 할 문제는 바로 통일 문제다. 과거 통일운동의 최일선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해 왔던 한국교회는 갈수록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따라서 한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심과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요구되고 있다.

올해로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66년, 분단 71년을 맞았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세월 속에서 남과 북은 서로를 적대시한 채 평행선을 걷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측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사회체제가 굳어졌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민족적 염원과 요구 앞에 한국교회는 평화통일을 향한 행진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남과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모든 한민족의 소원이며 염원이다. 또한 한민족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기도 하다.

△교회 통일운동 미미

한국교회는 과거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영향력은 축소되다 못해 미미한 지경이다.

80년대 사회의 모든 분야가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서 통일문제와 관련된 견해를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교회협을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는 정부의 방해를 뚫고 통일문제협의회를 꾸준히 개진해 왔으며, 여기서 이루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1988년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88선언’은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해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왔던 일들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 고백한 한국기독교 통일운동사의 중요한 이정표였으며,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만의 차별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노력은 세계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북한의 공식 기독교단체인 조선기독교도연맹(당시)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에 따라 남북한의 교회는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먼저 남북 교류를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정부가 대북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교회의 통일운동은 점차 그 입지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정부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한 만큼, 기독교 이외의 다른 부문들이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길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인 교회가 정책을 좌우하는 정부의 논리와 능력을 뛰어 넘기가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은 통일과 관련된 논리의 개발이나 정책제시보다는 남북한 교회의 교류와 만남, 그리고 북한 지원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정부 주도의 통일논의가 갖고 있는 가장 뚜렷한 한계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우리 사회의 통일논의를 독점하고 주도할 수는 있지만, 주변 정세의 흐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는 사실상 자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독교가 그동안의 통일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세워 놓았던 원칙과 신앙적 양심에 충실하게 정부의 정책을 비롯한 사회의 통일논의를 감시하고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88선언’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민중우선, 인도주의’라는 다섯 가지의 통일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논의의 주도권이 교회로부터 정부 당국으로 넘어간 이후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이 원칙들을 실천에 옮기기보다는, 대북지원을 빌미로 한 남북한 교회의 만남과 교류에 더 집착하는 듯한 과거의 모습을 계속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세워진 원칙들을 견지하면서,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통일논의를 열어 가야 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통일논의의 중심에 다시 서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9년 동독지역의 라이프찌시에 있는 성 리콜라이교회에서 시작된 작은 평화기도모임은 동독 지역에서 ‘여행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대규모 평화시위로 번져나갔고,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교회가 주도한 평화운동이 독일의 통일을 이루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통일에 앞서 남과 북 사이에 먼저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한국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행동하는 교회 절실

통일논의가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이에 따라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이 침체일로를 걷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기독교적인 통일운동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남북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의식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균열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수 세력이 득세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은, 남북한의 화해보다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 기반을 둔 남북 대결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확산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다시 한 번 전쟁 분위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남북한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신학적 논리를 개발해 확산시키는 일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의 사용이나 전쟁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으며,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민족의 생명을 살리고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길임을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인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에 줏대 없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의 정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 통일은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따라서 교회는 한반도 내부의 문제를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과 통일논의는, 통일의 과정이 단순히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남북한의 국민들을 비롯한 피조세계 전체의 생명을 지키고 보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통일논의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의 삶이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로 부각돼야 하며, 생명을 거부하는 어떤 형태의 통일논의나 과정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전제한다면, 통일논의는 신앙을 비롯해서 경제와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왜 무력이나 폭력을 거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아무리 상황이 어렵게 흘러가도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왜 반드시 계속돼야 하는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 고수해야

한국교회는 통일운동을 펼쳐나감에 있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교회협은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선언’을 통해 줄곧 한반도 비핵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 비핵화의 원칙을 천명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거나 핵무장을 한 후 북한이 폐기할 경우 동시에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지만 이는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마태복음 5:9)’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외쳐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외쳐 온 한국교회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과거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진영을 막론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통해 북한 동포의 식량문제 해결에 보탬을 주고, 대화와 교류의 확대로 화해를 모색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한국교회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었다. 일각에서 ‘북한의 배신’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러한 요인에 의해서이다.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가 동북아시아의 근본적인 상황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전에 재래식 무기로 대결하던 관계에서 이제는 핵으로 대결해야 할 상황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핵무기와 군비경쟁을 통한 무력으로는 절대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핵무기는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를 전쟁과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은 것부터 실천을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막연히 ‘통일은 되어야 한다’는 자세를 버리고, 통일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의외로 많다. ‘지금도 살 만한데 굳이 통일을 해야 되나’라든가 ‘미국 등 강대국들이 있어서 통일이 힘들다’라는 등의 대외의존적인 자세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또한 통일은 말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이루어진다. 의지가 없다면 결코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삶속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주변에 통일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고, 통일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통일을 열망하고 실제적인 준비를 해 나갈 때 비로소 통일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위한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 통일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이다. 통일비용을 지금부터라도 아껴서 모아야 한다. 아울러 통일 이후를 대비해 법과 제도적인 정비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지 구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기독교인들부터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이를 전 국민에게 확산시켜 나갈 때 비로소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해묵은 이념논쟁, 이제 그만

한국교회는 해 묵은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지도자들의 북한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남과 북의 통일은 남한의 문제, 문한의 문제가 아니라 한민족의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통일 논의의 중심에는 ‘사랑의 복음’이 자리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고 좌로나 우로나 속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이념 논쟁의 한복판에 있다. 한국교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수 성향의 교회에서는 북한 공산주의는 ‘악마’ 또는 ‘사탄’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 보수 기독교는 평화통일보다는 멸공통일에 더 익숙하고, 평화 공존보다는 흡수 통일을 더 선호하며, 화해 협력보다는 고립 붕괴를 무의식적으로 희망하는 경향을 갖는 전투적 유신론에 입각한 기독교적 승리주의, 힘에 의한 통일론, 혹은 증오의 영성에 더 깊이 고착되어 있다”는 이문식 목사(산울교회) 지적은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다.

교회가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사랑과 평화, 생명의 정신을 잃어버린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일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냉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분단을 고착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화해의 참뜻이 담겨 있다.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요구인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응답하는 것은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한국교회가 한민족의 요구인 민족통일의 문제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교회가 오늘의 상황에서 감당해야 할 선교적 과제를 저버리는 것은 예수님의 역사현장을 회피하는 것이며,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망각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해 묵은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교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과 평화, 생명을 노래할 때 통일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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