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화 목사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을 사순절이라 부른다. 사순절은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기이며,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이다.

사순절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준비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진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사순절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부활절이다. 교회가 지키는 중요한 절기가 있는데 부활절은 그중 가장 중요한 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는 부활절에는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큰 행사들을 하는 반면, 사순절은 어떻게 보내는지 그 의미마저도 흐지부지 돼 버렸다. 사실 부활절은 고난을 이겨냈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데, 우린 쉽게 의미를 잊곤 한다. 부활절만 기억할뿐, 사순절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우린 부활절에 앞선 고난주일에 대한 깊은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채찍과 온갖 모욕을 당하시며 갈보리 언덕을 넘으셨고, 곧 십자가에 못 박히셔, 물과 피를 다 쏟으신 뒤에야 숨을 거두셨다. 그런 고난이 지나고, 사흘 만에 승리의 부활을 맞이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크리스천에게 부활이란 고난을 수반 하는 뜻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절에만 국한되어 생각하지 말고, 고난을 이겨낸 그 순간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남은 사순절 기간을 좀 더 다르게 보내야 한다.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사소한 일로 이웃과 원수가 되었다면 사랑으로 용서하고, 친구에게 상처받아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내가 먼저 용납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빗장을 풀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맘을 닫고 서로의 얼굴을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이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를 용서하고 먼저 화해의 손을 건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품는 일은 고난을 이겨내는 것과 같다. 그것을 실천하기 까지는 죽기보다 싫고 힘들지만, 막상 용기를 내어 행동에 옮기면, 내게 다시 이웃과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그리스도를 닮아가길 소망하는 기독교인이 선택해야 하는 삶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남을 용서하는 일과 더불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고난동참의 행동은 바로 소외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데 있다. 소외된 이웃이 겪는 고통은 무엇인지, 그들을 돕기 위해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 기간을 통해 생각해야 한다. 주변에 소외된 이웃이 없는지 살펴보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도 사순절을 보내는 귀한 모습이다. 장애우,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등 외로운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벗이 되어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간혹 교회의 절기만 잘 지키면 된다는 식의 목회자나 성도들이 있다. 이들은 교회절기마다 특별한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노력에만 중점을 둘 뿐, 평소 교회주변의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한국교회가 고쳐야 할 부분이다. 실제적으로 한국교회가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특별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이웃실천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이 넘쳐 보인다.

하지만 안으로 살펴보면 아직도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만 중점을 두고, 속을 채우는 일에 부족한 점이 많다.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일에 주변의 이웃을 살피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을 함께 극복해 나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참사랑을 보여야 할 때이다.

천안성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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