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달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회가 유독 법적인 소송에 휘말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 없이도 잘 지낼 것 같은 교회가 각종 송사의 중심에 서있다. 이미 본지에서 수차례 다뤘듯이 마치 교회가 세상 법정의 문을 두드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있다. 세상의 갈등과 다툼을 치유해야할 교회가 오히려 화해와 일치를 이루지 못한 채 분열의 주체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은 냉소하다. 가뜩이나 성장의 동력이 멈춘 한국교회가 회생의 기회마저 잃어버린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 내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비대해진 교회가 분쟁의 발단

교회 분쟁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교회 내의 갈등과 분쟁을 화해조정과 중재로 해결하는 기구가 설립됐을 정도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도, 기독교화해중재원이 설립될 정도로 교회 안에서 이토록 분쟁이 많은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교회가 점점 비대해진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됐다. 웬만한 백화점보다 더 큰 교회가 곳곳에 세워지면서 이를 둘러싼 이권다툼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교회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라는 이미지보다는, 다툼의 장으로 변질됐다. 여기에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각종 정치까지 난무하면서 성전으로써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이권을 향한 담임목사와 장로들의 완력다툼이 심각하며, 당회에서는 서로 편 가르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들은 교회가 반 토막이 나든 말든,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면 반드시 관철해 나갔다. 그 사이 아무런 연유도 모른 채 성도들은 상처를 받았다. 간혹 교회를 위해 바른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온갖 방해와 공작으로 매도하기에 바빴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든 말든 백주대낮에도 교회 앞 길거리에서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마다 않는다.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외치며, 용역까지 동원하며 교회에서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낸다. 그것도 모자라면 본인들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법정 전문가들을 동원해 송사를 벌인다. 돈이 얼마가 많이 들던지,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던지 “끝까지 간다”는 심정으로 나서고 있다. 교회 분쟁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 교회는 전담 로펌과 계약해 그들의 송사를 전적으로 맡기는 웃지 못 할 일도 자행되고 있다.

법 전문팀이 특정교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웬만한 대형교회들은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로펌을 자랑스럽게 그들의 송사 전문팀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교회 내 갈등뿐 아니라, 언론사를 향해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본지도 모 대형교회의 논란을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이 교회 전담 로펌으로부터 국어사전 정도 두께의 협박용(?) 협조문을 받기도 했다. 말이 협조문이었지, 이 문서에는 특정 언론사들도 꼬리를 내렸으니 너희들도 송사를 걸기 전에 알아서 꼬리를 내리라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다. 교회가 세상이 보내는 훈계와 언론의 자정의 목소리도 무시할 정도로 각종 송사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외부로 가져가지 말고, 교회 안에서 찾기를 바라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에 철저히 위배되는 행동이다. 누구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동해야할 교회가, 그것도 담임목사와 장로들이 ‘나 몰라라’하고 있으니 할 말을 다한 셈이다. 이에 한국교회 내부적으로 송사를 뛰어넘어 스스로 낮아져 상대를 이해하고, 교회 안에서 모든 갈등을 해결하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한국교회 불화와 분쟁, 갈등의 온상으로 전락

주님은 화평을 가르치셨고(마5:24),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다(마5:9). 바울사도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을 누릴 것을 부탁했다(롬12:8). 그러나 유독 한국교회에서는 목회자와 성도 간의 불화, 분쟁,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연합기관을 둘러싼 분쟁을 비롯해 각 교단에서의 고소고발 사태, 개교회의 법정 다툼 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모자랄 정도다.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잘못된 것은 믿음과 대화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걸핏하면 사회 법정에 찾아가 형제를 고소 고발하는 비신앙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각종 송사에 재정과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매년 사회법정에 쏟아 붓는 비용만 수백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이 엉뚱하게도 교회 분쟁의 소송비용으로 새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곧 교회의 이미지 추락을 야기하고, 성도간의 반목과 불신을 조장해 전도의 문마저 막고 있다.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시시비비를 교회 울타리 밖으로 끄집어 나가는 것은, 교회 안에서 필요 이상의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다.

성경은 교회의 일을 사회법정에 가지고 가지 말라고 권면했고, “너희 중에 판단할 자가 없느냐”라고 꾸짖고 있다. 성경은 교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중재해 분쟁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 내 분쟁은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세상 법정으로 스물 스물 기어가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과정 속에서 수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입고 스스로 교회를 떠나고, 심지어 그리스도인이기를 거부하고 무종교가 되는 사례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허물과 죄까지도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한낱 시시비비도 참지 못한다는 것은 참다운 예수의 제자로 불리기 어렵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목회자부터 자성해야

한국교회가 각종 송사의 중독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목회자 스스로 회개와 각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교회 내 분쟁의 대부분 원인은 목회자로부터 나온다.

이는 담임목사직 승계가 있은 후 원로목사측과 후임목사측으로 나뉘어 갈등이 발생하거나, 담임목사가 교단과 마찰을 일으켜 교단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후 지지교인들을 이끌고 교단을 탈퇴하면서 담임목사에 반대하는 잔류측과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이탈측간의 예배당 등 교회 재산을 차지하려는 분쟁 등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담임목사의 재정 전횡과 독단적 운영은 교회분쟁을 부채질 하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부설 교회문제상담소가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분쟁교회를 상담해 진행한 ‘통계조사 및 경향 분석’에서 재정 전횡과 독단적 운영 등 담임목사로 인한 교회분쟁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임목사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만큼 솟아있는 가운데, 재정마저 불투명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이로 인한 분쟁은 당연한 결과라는 말이다. 결국 중심에 서서 교회의 안정을 기해야할 담임목사가 오히려 분쟁의 주체자로서 교회의 운명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목회자로서의 윤리적인 자질부족도 교회 분쟁을 일으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목회자로서의 갖춰야할 인격과 도리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교회를 개척했기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유독 많이 발생하는 성폭력, 폭력, 사기, 성추행 등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비윤리적인 범죄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설교를 뛰어나게 하고, 말주변이 능수능란해 차기 지도자라고 칭송받기도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모습뿐이다.

이는 넘쳐나는 신학교에서 졸업생들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배출해 내고는 있지만, 개개인의 성향도 파악하지 못한 채 장차 범죄자를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잘 나가는 차세대 지도자들이 이러한 문제로 교회 분쟁의 중심에 서고, 연이어 교회를 분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사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목회자로서 본분을 망각한 채 욕망에 사로잡힌 결과, 화평해야할 교회를 갈등이 넘치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때문에 교회 내부적으로 담임목사는 가장 낮은 자의 자세로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훗날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재정운영에 있어서는 반드시 당회를 거치고, 투명한 행정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감시망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신뢰를 기반으로 실행해야 한다.

언제나 양을 치는 목자의 심정으로 성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이나 안위를 위해 성도들을 밖으로 내모는 파렴치한 행위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 설령 의도치 않게 분란의 중심에 섰다면, 과감히 자신을 희생할 각오도 다져야 한다. 간혹 자신은 억울하다며 법정 다툼을 먼저 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옳은 선택은 아니다. 본인이 희생해 성도들 다수가 평안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의 종이 해야 할 일이다.

권력과 재물에서 벗어나야

이와 함께 성도들도 스스로 교회 분쟁의 중심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 솔직히 요즘 교회 분쟁은 목회자와 성도들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떻게든 허점을 찾아 내쫓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목회자로서 저질러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른 경우는 다르지만, 몇몇 장로들의 권력욕이 성도들에게까지 전염이 되어 교회가 다툼의 각축장이 되는 것이다. 이에 몇몇 성도들은 마치 선봉대라도 되듯이 교회 분쟁 다툼에 있어 만사를 제쳐두고, 모든 것을 다 참견한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은 행위다. 교회에는 엄연히 질서가 존재한다. 단순히 세상적인 이치로만 접근한다면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장로나 일반 성도들은 담임목사를 잘 보필해야 한다. 단순히 떠받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막 대하라는 것도 아니다. 양떼가 풀을 잘 먹으려면 목자를 잘 따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목사와 성도들의 관계는 가족과 다를 바 없다. 상대의 허물이 있으면 감싸주고, 함께 극복해 나가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가족 간에 서로 허물이 있다고 세상 법정에 송사를 거는 일은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성도들은 내부적으로 하나가 되어 교회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교회 안에서 문제해결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성도들의 역할이자, 작금의 한국교회에 주어진 과제다.

교회 분쟁의 핵심은 담임목사와 성도에 있지만, 단순히 개교회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솔직히 개교회의 분쟁은 교단이나 연합기관에서 발생하는 송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때문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교회가 교회다워져야 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교회 분쟁을 노회나 총회에서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여기에도 이권이 깊숙이 개입이 되어 있다. 따라서 노회나 총회 재판국도 돈이나 권력에 의해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게 처리해야 한다. 교회 분쟁에 있어 해결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잣대로 그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항상 인간의 머리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에 분쟁이 장기화되고, 더욱 심각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 분쟁을 세상에 호소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해야 한다. 최대한 교회 분쟁을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설령 교회 분쟁을 사회법정의 손을 빌려 해결했다고 해도, 과연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을까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실추에는 공헌(?)을 한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고린도전서 1장 10절 말씀을 온전히 실천에 옮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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