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욱 목사

한국교회는 과거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주도해 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광복과 분단 71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민족의 평화통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여기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이미 지난 80년대, 사회의 모든 분야가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서 통일문제와 관련된 견해를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교회협을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는 정부의 방해를 뚫고 통일문제협의회를 꾸준히 개진해 왔다. 여기서 이루어진 논의를 바탕으로 1988년에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8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88선언’은 분단체제 안에서 상대방에 대해 깊고 오랜 증오와 적개심을 품어왔던 일들이 우리의 죄임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 고백한 한국기독교 통일운동사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또한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만의 차별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노력은 세계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북한의 공식 기독교단체인 조선기독교도연맹(당시)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에 따라 남북한의 교회는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먼저 남북 교류를 시작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운동에 교회가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북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점차 그 입지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민간부문인 교회가 정책을 좌우하는 정부의 논리와 능력을 뛰어 넘기가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의 통일운동은 제자리걸음을 넘어 그 방향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통일논의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바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이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이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는 사실상 자명하다. 기독교가 그동안의 통일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세워 놓았던 원칙과 신앙적 양심에 충실하게 정부의 정책을 비롯한 사회의 통일논의를 감시하고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88선언’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적 대단결, 민중우선, 인도주의’라는 다섯 가지의 통일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통일논의의 주도권이 교회로부터 정부 당국으로 넘어간 이후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은 이 원칙들을 실천에 옮기기보다는, 대북지원을 빌미로 한 남북한 교회의 만남과 교류에 더 집착하는 듯한 과거의 모습을 계속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세워진 원칙들을 견지하면서,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통일논의를 열어 가야 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다. 어떤 경우에도 무력의 사용이나 전쟁은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으며,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민족의 생명을 살리고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길임을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인식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에 줏대 없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가 동북아의 정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 통일은 남과 북이 주체가 되어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따라서 교회는 한반도 내부의 문제를 우리 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독교계의 통일운동과 통일논의는, 통일의 과정이 단순히 정치적인 통합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남북한의 국민들을 비롯한 피조세계 전체의 생명을 지키고 보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통일논의의 과정에서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의 삶이 가장 중요한 의제 중의 하나로 부각돼야 하며, 생명을 거부하는 어떤 형태의 통일논의나 과정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 남북간의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는 지금이 바로 기독교적인 통일운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예장 대신(백석)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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