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교회와 상관없는 정치적인 것

올해는 민족해방 71년, 분단 71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68년, 6.25 한국전쟁 66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에다 올해는 3.1만세운동 97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역사적인 의미가 큰 해이다. 민족적, 교회적으로 여기에 걸맞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며, 3.1만세운동 100년을 향한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이나,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민족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신학자들은 민족분단의 한복판에 있었던 기독교가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극복과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 <민족통일과 기독교>(한길사)에서 “세계분단의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었다. 세계교회는 세계분단 극복을 위해서 말하고, 행동했다”면서, “한국교회도 민족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제는 교회가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분단극복에 대해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수 없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예배시간마다, 아니 각종모임에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기도하며, 민족통일의 전위대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이후 북한선교정책도 수립했다.

각종모임에서 드리는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는, 행동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평화적인 민족통일, 남북한민족의 하나 됨이 그 만큼 절실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와 교단이 세운 북한선교정책은 통일 이후, 북한에 남한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즉 남북통일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국민 또는 교회 대부분의 소리라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일의 문제는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단체인 교회가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또한 교회가 통일문제에 관여하면, ‘국론분열’의 위협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 내부에서 우리의 과제는 교회를 지키고 선교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적 차원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통일을 논하는 것은, 교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를 믿게 하고, 천당에 가게하면 된다”는 것이다. 오늘 ‘북한선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는 교회는, 제 힘으로 통일하자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통일 이후, 그곳에 상륙하여 교회를 세우자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한국교회는 민족사에서 떨어져 자기 게토에 감금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역사와 유리된 채 교회의 게토화에 모든 힘을 기울여 왔다. 통일문제는 교회가 아닌 누군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통일 후 그곳에 가서 많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단 71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이 같은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독일 통일의 중심에 독일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제도상으로 어떤 종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정책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북한이 명목상의 종교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이들 종교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지 않다. 이것은 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독일통일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

그래도 독일은 분단된 상황에서도, 동독과 서독의 교회는 하나의 교회로 유지되었다. 동서독의 교회는 분단을 강요당하면서도 일치감이 강했다. 때문에 동독과 서독 정부는 교회의 교류를 막을 수 없었다. 두 정권이지만 하나의 교회로 머무를 수 있었다. 서독은 교회기구를 통해 계속 동독 국민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했다. 분단이후에도 베를린을 통하여 수많은 동독의 국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유입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독정부는 교회기구를 통하여 동독에 감금되어 있는 많은 정치범들을 위해 막대한 돈을 지불하면서, 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완전히 밀폐된 상태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1천만 이산가족이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하지를 못하는 비극 속에서 울고 있다.

무엇보다도 6.25전쟁이 준 상처는 씻을 수 없다. 한민족은 해방의 감격을 단일민족으로서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자기주체를 재확인할 새도 없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문제는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느냐는 것이다. 북한철수를 해방군의 자랑으로 내세운 소련은 탱크 등 막대한 무기를 제공하는 등의 사정을 미루어 볼 때 한반도에서의 동족상잔의 비극은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안병무 저, 1986년 12월, 한길사 참조)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한민족은 서로 다른 민족에게서 볼 수 없는 적대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그 결과 모든 것이 기형화되었다. 정치를 비롯한 종교, 교육에 이르기까지 분단 상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북한 정권은 한사람을 위하여 전 인민이 희생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1인의 정권유지를 위해 핵무기 개발도 마다하지를 않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 남한의 보수적인 인사들도 남한의 핵보유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도 간간히 들여오는 한반도의 비핵화의 목소리는 기쁜 소식이다. 여기에다 자유이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이하 화통위)가 남북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국제 캠페인을 미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스위스, 일본, 중국, 홍콩 등에서 벌이기로 한 것은 무기경쟁에 돌입한 남북한의 상황에서 매우 좋은 현상이다. 이것은 모처럼 한국교회가 국제사회에 남북한의 정전과 분단체제의 실상을 알리고, 화해와 평화를 위한 여정을 연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국제캠페인이 얼마만큼의 실효를 얻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화통위는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을 움직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기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화통위의 뜻에 같이하는 일부 교단의 목회자와 평신도는, 남북한 통일의 문제를 국민부터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며, 민의 위한 평화적인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교회가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교회협을 비롯한 기독교계의 통일을 위한 회의가 숨어서 진행되어 왔던 것에 비하면 매우 진일보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유리된 채 자기 게토에 감금된 교회

안병무 박사는 자신의 저서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에서, “민에 의한 민족통일! 이것만이 진정한 통일의 길이라는 확신 위에 우리는 민족통일운동을 전개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통일운동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결단을 하게 한다”고 강조한바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과거나, 지금이나 남북한 평화적인 통일과 분단극복이 남의 나라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이유는 선교의 개념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통일의 문제, 분단극복의 문제가 다른 누구인가가 하는 일이고, 통일 후에 남한의 교회가 북한에 많은 교회를 세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가 바로 역사의 한복판에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지난 수년간 보수, 진보를 떠나 모두가 북한동포돕기를 비롯한 한민족 서로돕기, 남북한교회 교류, 한국대학생선교회의 북한에 젖염소보내기, 월드비전의 북한 국수공장 설립, 대한예수교장로회 열린총회의 북한 어린이돕기, 기독교대한감리회 서부연회의 북한동포 땔감지원 등을 활발하게 펼쳤다. 그것에 대해 “무조건 퍼주기”, “북한정권의 핵무기 개발비 지원” 등 비판의 목소리가 교회 내부에서 높았다.

정부차원에서 조성된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금강산여행이 중단된 상태에서 남북한 교류의 길은 갈수록 멀고 험하다. 여기에다 북한정권의 핵실험 등은,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길을 험난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맞서 남한에 사드 배치 등은 이웃나라들과의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며, 통일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들이 시간이 가면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와 화해, 그리고 민족통일을 노래해야 할 교회는, 남북한의 분열을 고착화시키는데 일조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배시간 마다 빼놓지 않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것은 행동하지 않는 교회의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통일운동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노래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하여 남한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책임 없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은 핵무기 실험을 포기해야 함은 물론, 남북한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그리스도교는 북한정부와 우리정부, 그리고 국제사회에 촉구해야 한다. 또한 같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의 통일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한국 그리스도교는 ‘북한선교’와 ‘남한선교’를 떼어 놓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선교는 북한만도 아닌, 남한만도 아닌, 200여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민족선교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관념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신학과 신앙에서 벗어나, 예수님이 역사의 현장에서 성취한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사랑과 화해의 신앙과 신학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호화로운 성전의 하나님을, 한민족의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한다.

가던길 멈추고 돌아서라

그러기 위해서 한국 그리스도교는 가던 길을 멈추고, 한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 그리스도교는 한민족의 ‘역사의 현장’에서 예수님께서 실현한 화해와 나눔, 섬김의 선교를 실천, 민족과 역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교회로 거듭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화해운동이며, 하나 되는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편 보수적인 한국 그리스도교나, 정부는 범교회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7.4 공동성명 3대 원칙을 바탕으로 한 통일논의의 발판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국민적 염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7.4공동성명은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천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해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3가지 원칙을 높이 평가했다. 지금도 국민들은 남북한 당국자들이 이 원칙에 바탕을 둔 통일논의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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