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1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다함께 생각해보자.

▲ 김근열 목사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1945년 미국은 일본에 2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가져왔던가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8월 9일 나가사키 시에 또 한 개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된 히로시마는 당시 일본군 제2사령부이면서 통신센터이자 병참기지였으므로 일본의 군사상으로 중요한 근거지였던 것이다.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지 6일 후에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9월 2일 항복문서에 사인하면서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과 세계 제2차 대전의 종전을 알렸다. 한편 독일은 이미 5월 7일 유럽에서 항복을 선언했다. 이 원폭 투하로 인해 전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3원칙을 수행했다.

우리는 전쟁보다 평화를 추구해야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 민족의 가슴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보자. 우리 청소년들 또한 인류 미래의 평화를 위해서 위대한 꿈을 갖고 희망찬 내일을 설계해보자.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말은 미국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말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사람들의 출신을 조사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수많은 위인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말의 정신이 충만해져 있기 때문이며 그 환경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교도들이 미국동부에 정착하면서 자녀들에게 자주하는 말이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말썽을 피워도 욕하고 악담하는 어른들이 없었다. 오히려 왜 그랬는가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재 아인슈타인은 지성보다 중요한 것은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 부모들은 어떠한가? 특히 기독교인 가정을 살펴보자. 지나치게 자녀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공부 일등이면 마치 인생일등인양 착각하고 살아온 적은 없는가? 한번쯤은 공부만 지나치게 강요해온 것을 반성해보자.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는 말에는 결코 소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년 소녀 뿐만 아니라 앞길에 야망을 가지고 있는 한 노인이라도 그는 영원한 소년인 것이다. 야망이라는 말에는 대망이라는 뜻도 있는데 사람은 작은 희망보다 큰 희망을 갖는 편이 더욱 좋다. 큰 꿈은 처음에는 미미하게 보이나 나중에는 참으로 거대하게 나타난다. 링컨은 노예해방의 꿈을 가졌으며 그 꿈대로 실현시켜나갔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기에 그 꿈대로 실현되지 않았는가?

우리 대한민국은 광복 71주년을 맞이했다. 해방을 꿈 꿀 수 없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자들이 있었고 순교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광복절에 새로운 다짐을 해보자!

아직도 일제의 망언은 계속되고 있다. 엄연한 대한민국의 우리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표기해오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이제 우리나라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평범한 것 같지만 그래서 위대한 후손들이 많이 나와야한다.

순교자들의 피 흘려 물려받은 신앙의 자유를 가볍게 여겨서는 않된다. 머리에서는 순교자가 나오지 않는다. 온몸으로 가슴깊이 순교자 신앙의 정신을 꼭꼭 이어받아야 한다. 이 나라를 위한 순국, 순교하신 분들을 되새겨 보고 우리 민족과 함께 우리 젊은 세대와 함께 큰 꿈을 심어보자!

1963년 8월 워싱턴 대행진때 마틴루터킹 목사는 ‘I have a dream’ 이라는 유명한 설교를 했다. 고통스럽고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에서도 꿈을 마음에 심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 광복 71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민족의 가슴에 큰 꿈을 심자!

본지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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