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누가복음 6장 20절)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책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성경구절이다. 구약성서는 바로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던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과 시련을 주제로 해서 생겨났고, 신약성서는 가난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의해 만들어 졌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히브리인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었다. 이들은 기근과 노예제를 피해 떠돌아  다니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히브리라는 말은 어떤 특정한 민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낮은 천민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히브리인들은 토지도, 집도 없이 떠돌이며, 남의 것을 약탈하거나, 노예가 되거나, 돈을 받고 전쟁해 주는 용병노릇을 하며, 힘겹게 살았다. 한마디로 히브리인들은 춥고, 배고프고, 이가 갈리는 사람들, 아니 한에 맺힌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에집트에서 탈출, 팔레스티나에서 부족 연합체를 만들어 놓고, ‘이스라엘’(하나님이여 통치하소서)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가진 자들로부터 착취를 당하며, 얼마나 힘겹게 살았으면,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했겠는가(?) 여기에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역사적 갈망이 담겨 있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것은 폴리스란 도시국가를 형성하고 노예들을 거느린 자유롭고 부유한 사람들의 사상인 그리스의 고대철학과는 전혀 다른,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해방을 주제로 삼고 있다. 고대철학은 고상하고, 조화 있는 질서의 삶을 추구한다. 유교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사상이 아니라, 지배자의 사상이다. 힌두교나, 불교는 어떻게 하면 개인이 깨끗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추구한다. 개인의 정신적인 평화를 얻기 위해 도덕적, 종교적 수행에 힘쓴다. 한마디로 인간의 무지와 탐욕, 그리고 노여움을 어떻게 극복하여 정신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해 관심이 있다.

이밖에도 많은 종교에 사상들이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억눌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행방, 그리고 자유를 주제로 한 경전은 없다. 성서만이 이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런 성서가 로마로 건너가서 제도가 되었고, 유럽으로 건너가 문화가 되었다. 이때부터 성서는 부자들의 종교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히브리 노예들도 국가를 세우고 강력한 왕권통치가 뿌리를 내리면서, 이웃나라들과 전쟁을 해야 했고, 이웃나라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자연스럽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지를 못했다. 왕을 비롯한 지배 특권층이 나타나 일반백성들을 경제적으로 빼앗고, 억누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700년동안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되어 신음을 해야만 했다.

이 오랜 세월동안 히브리 노예들이 맛본 뼈아픈 고통과, 이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갈망이, 그들의 신앙에 담겨서 신구약성서가 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역사는 억눌린 사람들이 해방될 날, 승리하는 날을 학수고대하는 기다림의 역사였다. 즉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사회가 시작되기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기다렸다. 이러한 희망과 기대가 하나님의 나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릴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정의와 평화의 나라이다.

억압과 고난 속에서 살아갈 때 세례요한이 나타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무 힘이 없는 떠돌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 희망을 보앗고, 새 힘을 얻었다. 이 때부터 억눌리고, 착취당하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예수님도 이 운동에 가담하여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요한 역시 헤롯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했다. 이 때부터 예수님은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인천 갈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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