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흔히 교회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한다. 옳은 말은 아닌 것 같다. 반대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 그리스도가 가는 그곳에 교회도 가야 한다. 올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너는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면, 내 돈을 돈놀이하는 사람에게 맡겨두어 내가 와서 본전에 이자를 붙여 받도록 했어야 할 것이다…(중략)…이 쓸모 없는 종을 바같 어두운데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복음 25장 22-30절)

이 성경귀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열처녀 이야기에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예비해서 신랑을 맞고, 다른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지 못하고, 잔치에서 쫓겨났다. 성서에는 대심판의 이야기도 나온다. 굶주린 자, 목마른 자, 집 없는 자, 헐벗은 자, 옥에 갇힌 자에게 한 것이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성서의 이러한 비유는 하나님나라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달란트의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5달란트 받은 자나, 2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인은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착하고 실신한 종아 잘하였다. 네가 작은 실에 신실했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의 기쁨을 함께 누리자” 1달란트 받은 자도 장사를 해서 1달란트를 남겨왔더라면, 주인은 같은 칭찬을 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는 종들의 행위는 하나님나라의 기쁨이며, 주인의 기쁨이다. 그들은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기 위해 행동했다. 주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주인의 기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했다. 그러나 1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르게 행동했다. 그는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에 대한 주인의 심판은 단호했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데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분명 이 종은 책임을 회피하고, 주인에게 충선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성했다. 그리고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가만히 있으려고 했다. 또 이 종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 죄가 없으리라는 소극적인 생각이었다. 그의 가장 큰 죄는 예수를 믿고 따르지 않은 죄고, 굶주리고 억눌리고 병든자에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고,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나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1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해동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1달란트 받은 종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예게 세상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 이루어 주실 것으로 믿고 사회와 역사를 방관했다. 이런 변명은 1달란트 받은 종의 변명처럼 허구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은 새로운 미래를 여는 희망의 끈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 보다는 교회와 자기자신에게 무게의 중심을 두고, 충성하고 있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맡겨진 것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붙잡고 지키는 보수주의에 떨어지고 있다.

또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행동 없는 삶에 빠져 있다. 이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고,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적게 행동하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은 분명 1달란트를 받은 종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가야 한다. 버림받은 자들이 있는 곳,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예수님을 섬기듯 이들을 섬겨야 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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