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주 규 목사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회개’의 목소리가 한국교회 전반에 넘쳐나고 있다. 지금의 교회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의 교회처럼 ‘믿음’보다는 ‘돈’을 우선시하는 부패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교회는 이미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적인 신뢰도 또한 바닥을 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존경하지도, 희망과 안식을 주는 곳으로 인식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개혁과 회개를 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머리가 갸우뚱거려지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회개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묵념이나 묵상적인 회개를 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입으로만 회개를 외칠 뿐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되는 회개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기독교 위기를 말하고 회개를 외친 지가 언제인데 우리의 모습은 회개 이전의 상태 그대로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국교회에 회개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회개로 향한다면 무엇인가 결과가 오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회개는 외치면서 구체성을 결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는 공염불이나 마찬가지다.

회개는 잘못한 일(죄)을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깊은 관련이란 결국 완벽한 그분의 말씀을 어겼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완벽하시다는 뜻은 하나님은 제일 원인이요 법 자체이시며 의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법을 어김이 곧 죄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곧 범법이기 때문에 죄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은 더 구체적이고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는 기록된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심상의 회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타 종교에서는 항상 자기 자신의 됨됨이에 관하여 다시 말하면 자기수양적인 회개(소위 깨달음)를 한다. 그렇게 함으로 자기를 바르게 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는 상대적 회개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향하여는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은 곧 진리요 법이며 의이시기 때문에 회개 자체는 절대적이다. 인간이 나에게 어떤 관계에 있던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그분의 말씀과 법(계명)에 비추어 뉘우치고 돌이킨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회개는 절대적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라고 할 때 자칫하면 하나님을 향한 묵념이나 묵상적인 회개를 하기 쉽다. 그러면 자기는 회개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상관도 없는 회개가 되는 수가 많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응답과 대화 및 표적이 필요하다. 회개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인가 싸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자기도취적 회개가 되기 쉽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회개하고 죄를 씻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다.

회개할 때에 구체적으로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는 회개를 하여야 한다. 회개하노라 하고 전혀 고치는 기색이 없으면 하나님의 보응의 진노는 우리를 결국 망하게(육신)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오늘날 이처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은 그 동안 많은 목회자와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리고 성도를 자처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입으로만 회개를 외치고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결과인지도 모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너도 나도 회개를 외치는 이 때에 우리 모두 자신을 돌아보고 입으로만 회개를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봤으면 한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또 다시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고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장 합동개혁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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