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로 어수선한 2016년도 2달이 채 남지 않았다. 가뜩이나 장기 경기침체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꽁꽁 얼어붙었다. 아끼고 절약하며 한 해를 보냈는데, 벌써부터 내년 걱정이 앞선다. 이는 각 교회도 마찬가지다. 각종 이유로 교회 재정이 모자란 가운데, 차기년도 예산을 편성하려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가올 한 해의 전체를 계획하는 중요한 것이기에 마냥 소홀히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마다 해오는 예산편성임에도 골머리를 앓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리한 교회건축, 마이너스 성장 부채질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각 교회의 예산은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교회 부흥과 성장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웅장한 교회 예배당(?)을 짓기 위해 빌린 은행 빚을 갚는 것이 만만치 않다.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에 이르기까지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비교적 재정규모가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새해 예산을 편성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교회 부흥과 성장을 뒷전에 두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결국 각 교회들은 마치 세상적 경제관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예산편성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있다.

그러다보니 작금의 교회 예산의 대부분은 무리한 예배당 건축, 증축으로 인해 발생한 은행에 빚진 원금과 이자 갚기에 쓰이고 있다.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몇몇 교회는 교회 재정의 90%를 훌쩍 넘는 건축비를 되갚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이는 대형교회와 작은교회 할 것 없이 그 액수만 차이일 뿐 다르지 않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꾀하기 위해 무리하게 바벨탑을 쌓은 셈이다.

휘황찬란한 예배당에는 덩그러니 강대상밖에 남지 않았다. 세상적인 물량주의로 지은 예배당이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다. 이러한 교회는 결국 교회 예산편성에 있어서도 80% 이상을 은행 빚 갚기에 모두 ‘올인’하고, 전도나 교회부흥에 쓰이는 비용마저도 스스로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무리한 건축이 재정적으로도 마이너스를 불러오고, 교회적으로도 마이너스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분수적 예산 편성은 곧 교회의 사명이자 방향성마저 상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무엇보다 세상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사회복지비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선교비 감축까지 야기하고 있다. 사랑의 종교를 벗어던지고, 백화점식 맘모스 교회를 찬양한 나머지, 이제는 한국교회를 향해 ‘사랑’이란 단어보다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외된 이웃을 위한 섬김의 투자가 줄어들면서 한국교회를 향한 외부시선도 따갑기만 하다. 가뜩이나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비판의 대상인 한국교회가 스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선교강대국이라는 명함마저도 넘겨줘야할 처지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 성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고 있다. 10년 후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을 정도로, 그만큼 한국교회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교회 밖 나눔과 섬김에 투자하라

따라서 각 교회는 이제 해마다 천편일률적인 예산 편성을 짜는 틀에서 벗어나 진정 교회 밖 소외된 이웃을 위한 예산 편성이 되도록 알찬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숫자적인 개념에서 짜 맞추지 말고, 올곧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예산을 슬기롭게 책정해야 한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직시하고, 그에 걸 맞는 예산이 편성되도록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 편성에 있어서 최소 1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는 그 어떠한 것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다. 각 교회에서 예산 편성을 줄일 때 가장 먼저 손을 대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하나님과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절대로 줄이지 않겠다는 각오로 맞서야 한다. 이는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지켜나갈 수 없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 땅에 소외된 이웃을 위해 콩 한쪽도 나눈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야 한다.

차기년도 교회의 성장은 바로 이 예산편성에 직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각 교회마다 재정상태가 암울한 시기에도 섬김의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다. 사회복지비 삭감은 교회의 전도자원인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고, 교회의 문턱을 넘는 교인수를 줄이게 된 것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기독교의 중심사상인 사랑의 선교를 확대하는 일은 곧 전도자원을 개발하는 일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부는 교회부터 성장하고 나서 교회 밖 이웃을 돌아보겠다는 의욕 넘치는 목회자들도 있는데, 이는 수순이 잘못됐다. 앞서도 살펴봤듯이 직접적인 전도의 효과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행동으로 보일 때 더 큰 효과가 있다. 2017년도 각 교회의 예산편성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럼에도 교회의 크기를 더욱 키우거나, 도심으로 이사를 가거나, 교회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커피숍 등을 위한 교회 예산에 목을 매는 경우가 있는데, 나누지 않는 교회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교회 밖 소외된 이웃을 위해 10%가 아닌 더 큰 것을 투자할 때 자연스럽게 교회 성장을 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는 부자들을 위한 축복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장 약한 자들을 위한 보금자리다. 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섬겨야 한다. 물론 의례적으로 보여주기식 나눔을 해서는 안된다.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온 섬김을 보여야 한다. 자칫 전시용 불우이웃돕기는 교회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

교회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서 교회 밖 이웃을 위한 10%를 남겨뒀다면, 나머지 예산에 대한 투명한 책정도 중요하다. 예산편성은 예산수립 처음부터 결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 인간적인 실리추구에 흔들릴 경우에는 재정이 온전히 사용될 수 없다. 제 아무리 작은 교회라고 해도 목회자 단독으로 예산을 처리할 경우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모두의 의견을 조율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고 상대를 무시하거나, 혹은 제외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는 차원에서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예산 편성에 있어 각 부서간의 의견 차이를 조율하고, 부족한 재정으로 인해 삭감을 할 경우에는 우선순위를 조정해 전체 사역의 균형을 따져야 한다.

특히 예산수립을 함에 있어 교회의 사명달성에 누가되지 않는 범위를 정해야 하고, 믿음의 예산편성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예결산의 결과는 철저하게 교인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본질을 되찾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나눔과 섬김, 봉사의 정신을 되살려 그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이것이 실망감만 심어준 한국교회가 다시 신뢰감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