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세웅 목사
나라 전체가 뒤숭숭한 가운데, 더욱 힘이 드는 것은 삶의 의욕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벌어서 살아가는 이 땅의 가장 소외된 이웃들의 노력마저도 헛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가진 자들의 비리와 부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이번 최순실 사태로 만천하에 드러났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성사되기 힘든 세상이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마저도 처절하게 짓밟아 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누구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줘야 할 한국교회마저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권력에 아부하는 모습을 보여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이 마지막으로 믿고 또 따랐던 한국교회에 대해 실망감만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말로만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췄다, 향후 50년 한국교회의 미래가 암울하다 등을 외칠 뿐 실제적으론 아무런 대비도 안하고 있다. 오히려 각종 그릇된 행태로 그 시기를 더욱 앞당기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중에서도 가진 자들의 종교로 전락한 나머지, 가장 보듬어야할 사람들에게 소홀한 점은 한국교회를 더욱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교회 마저 그들을 모른 채 한다면 도대체 누가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그들의 부르튼 손을 잡아준단 말인가.

이제는 한국교회가 진정 나설 때이다. 더 이상 뒷짐만 지고, 나 몰라라 하지 말고 행동으로 나설 때이다. 단지 보여주기식 행동이 아닌,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도록 진심을 담아야 한다. 마음이 떠난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가녀린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포근하게 감싸줘야 한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간혹 재정의 10%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에 쓰지 않는 교회들이 있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행동임을 인식해야 한다. 콩 한쪽도 나누겠다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교회가 제 아무리 크고, 제 아무리 유명하면 뭐하나, 소외된 이웃들에게 그저 돈 많은 궁궐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데 말이다. 그것은 이미 주님의 몸된 교회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교회를 향해 돈만 밝히는 곳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게 만드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정말 중세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더 빠르게 한국교회는 그 생명을 다할지 모른다.

따라서 나눔과 섬김의 본을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교회 성장이 주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단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모습에 불과하다. 진정 가장 낮은 자의 심정으로 그들을 섬겨야 한다.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의 미소를 되찾아 줘야 한다. 10%의 재정이 아니라 그 보다 더 많은 재정을 할애 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것이 직접 전도를 위해 재정을 쓰는 것보다 더욱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온전하게 거듭나길 바란다. 한 해의 곡식을 수확한 데 감사의 기도를 드렸으며, 이제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눠야 한다. 이 나눔과 섬김 운동은 특정한 날이나, 계절에만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 겨울에만 나누고 나머지 계절에는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곧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한국교회 이미지 실추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나눔과 섬김은 일 년 365일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누구 한 사람만의 일도 아니고, 어느 한 교회의 일도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행동으로 옮겨야할 것이다. 이제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대한민국 방방곡곡, 전 세계의 소외된 이웃을 향해 한국교회의 저력을 보여줄 때이다.

예성 증경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