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범 목사

얼마 전 한 대형교회에서 개최된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참석했다. 조그만 시골교회의 목회자에서부터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가교회 목회자들에 이르기까지 작은교회 목회자들이 대다수였다.

이들은 커다란 대형교회 곳곳을 돌아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커다란 건물과 부속 건물, 넓은 주차장을 돌아보면서 이들은 한결 부러운 표정이었다. 이 교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다면서 이런 교회에서 목회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는 너무 작고 가난한 교회라고 신세한탄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국교회에 커다란 교회가 훌륭한 교회라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했다.

한국교회는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자산을 건물이나 주차장, 수양관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업에서나 적용될 만한 자본주의 논리나 물질만능주의에 너무나 깊이 젖어 있는 것이다. 세상적인 사고로는 교회의 자산이 교회가 가진 부동산 등 교회의 재산에 맞춰지는 것이 당연할는지 모르나 영적인 사고로 생각해 보면 교회의 진정한 자산은 결코 이러한 외형적인 것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큰 교회의 목회자는 물론이고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까지도 세상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그저 많은 재산과 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할 것인데 세상의 논리에 함몰돼 부와 재산을 탐하고 여기에만 주안점을 둔다면 결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매우 안타까운 것은 기업과 세상이 가지고 있는 자산의식이 교회로 들어와 깊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점이다. 이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영성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주고 방해를 하고 있다. 알다시피 기업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윤 추구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부를 창출하는 것이 기업과 세상의 논리다. 자산의 가치와 이익의 수치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다. 이러한 세상적 가치관이 교회의 가치관과 다를 바가 없다면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분명하게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진정한 목적은 이윤추구가 아닌 ‘영혼구원’에 있으며, 구원받은 ‘영혼의 성화’에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진정한 수익과 자산은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어 참 평안과 자유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변화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늘려 나가는 것이 바로 교회의 자산이요 수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에 힘쓰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전도를 하여 변화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교회는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진정한 자산은 헌신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섬기는 소망교회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업적 이윤의 가치기준으로 보면 보잘 것 없지만 우리교회를 통하여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영성말씀을 통하여 참 평안과 자유를 체험하고 변화된 인생을 사는 분들이 늘어가기에 진정한 부자교회라고 자부한다.

구령의 열정이 떨어지고, 구태의연한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출근도장이나 간신히 찍는 이 시대에, 진정 우리 소망교회는 영혼구원과 영혼성화로 신앙의 인격, 성령의 체질, 기도의 습관, 말씀의 체험, 성만찬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영적자산이 넘치는 부자교회다. 교회의 진정한 자산은 건물이나 대지, 수양관이나 주차장이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구령에 불타는 제자,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제자, 나보다 남을 조금 낫게 여기는 제자, 말없이 가슴을 찢는 제자, 이런 분들이 교회의 진정한 재산이다. 교회 건물이 화려하다고 해서 교회가 재산이 많다고 해서 결코 부러워하지 말자. 교회의 진정한 자산은 바로 변화된 그리스도인, 바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장 성서 총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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