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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읽지 못한 한국교회의 앞날 걱정스럽다”왜! 한국교회는 대통령 감싸기에 온 힘을 결집했는가(?)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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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9  16: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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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한국교회의 선교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그리고 선교의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버림받은 자들의 고통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진리를 잃어버린 결과이다.

교회는 잃은 자에 대한 초월적인 사랑에 근거한 공동체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세상권력과 결탁해서 부자교회가 됨으로써 국민들을 등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최태민 목사-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 알 수 있듯이 국민 80%이상, 국회의원 78%가 탄핵에 찬성했다. 국회에서는 234명 찬성, 56명 반대로,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그 중심에 촛불민심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감싸기에 앞장섰던 한국교회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아니 어떤 태도를 보일지 걱정스럽다.

왜 교인 3명 중 1명이 자신들이 출석하는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을까(?) 이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 교인이기를 포기하겠다고 했는가(?). 이 같은 결과의 여론조사는 한국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운동을 벌이지 못한 것에 대한 교인들의 반감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교회가 역사의 현장에서 예수님이 벌인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12월 엄동설한이 시작되었다. 배고프고, 병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슬픔에 잠긴 떠돌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주변에는 예수님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해 잘난 예수쟁이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분,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 등등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말들을 절절히 늘어놓는다.

예수쟁이들의 이 같은 답에 대해 이들은 “좋은 분이시네요”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배고픈 배를 채워줄 밥과 추위를 이겨낼 따뜻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구원이니, 천국이니 떠들지 말고, 밥을 먹여주는 사람이 최고이고, 그가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구원 행위는 가난하고, 천박하고, 소외되고, 떠돌이, 창녀, 병신, 세리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셨고, 천국에 이들이 먼저 들어간다고 선언하셨다.

메시야의 계절 12월, 예수님이 이 세상 오신 성탄절을 앞두고, 교회마다 축제 분위기이다. 그런데 교회의 사회를 향한 ‘사랑의 온도’는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 아니 예수님의 역사 현장을 망각하고 있다는 말로 들려온다. 한마디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교회가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예수님은 배고프고, 굶주리고, 병든자, 떠돌이, 병신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만드셨다. 그리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매셨다. 그리고 잘난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배고프고, 굶주리고, 병든자, 떠돌이, 병신 등 보잘 것 없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주었다. 그의 하나님나라운동은 추상적이며, 감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루려고 하셨다. 항상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사람들 속에 있다”
한국교회 ‘십자가 통해 세상의 구원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진리 깨달아야

일부 보수적인 목사 오방과 악령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 감싸기 앞장
최태민 목사 발아래 엎드린 한국교회, 목사가 ‘맞다’•‘아니다’ 놓고 논쟁

   
 
역사의 현장서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 벌여라

배고픈 자에게 떡을 주었고, 억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갇힌 자를 풀어주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기쁜소식)은 행동하는 것이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라. 그러면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12월이 시작되면서 일부 단체와 교회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과거 한국교회의 이웃사랑실천운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가난했지만 가난하고, 소외되고, 떠돌이, 병신, 노동자, 고난당하는 사람 등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교회였다. 교회는 작았지만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펼쳤다. 그런대로 교회의 본질과 가치관을 유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는 크게 성장했으며,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로 선교 100년 만에 1300만 명이라는 교세로 급성장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60-80년대 교인들이 몰려오면서 한국교회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호화로운 성전에 가두기 시작했고, 세상과 소통하지를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이제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교회는 다윗문화에 길들여진 나머지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는데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대형 교회당을 채우기 위해 곁에 있는 작은교회의 교인을 빼앗는 세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성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규탄하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심판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어버린 한국교회를 향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예수님이 오늘 한국에 오신다면, 한국교회를 향해 어떤 심판을 내리실까(?) 다윗문화에 길들여지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쯤 생각해야 할 갈림길에 놓여 있다, 예수님은 부자청년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부자는 천국에 가지를 못한다”고 했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하루 종일 큰소리로 예수! 예수!를 부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기독교는 행동하는 종교이다. 예수님도 역사의 현장에서 행동하며, 가난하고, 미천하고, 소외되고, 떠돌이, 병신, 창녀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오늘 한국교회가 역사의 현장에서, 아니 고통스럽고 처절한 역사의 현장에서 행동했다면, 세상으로부터 비난은 면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는 “‘골방기도’를 여기에서 멈추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야만 교회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고, 돌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자, 떠돌이, 불구자, 노숙자, 농민, 노동자들을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성장했던 당시에는 어떤 형태가 되었던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선교를 감당했다는 사실이다. 12월 25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교회마다 매주 촛불 하나씩을 늘리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성탄절을 축하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가 촛불의 의미를 알면서도, 수백만 촛불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나라운동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성장한 한국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을 떠난 교회, 민을 떠난 종교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 종교의 역사를 보면, 어떻게 몰락했는가(?)를 분명하게 답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교회는 고통스럽고 처절한 현장에 있어야 한다

민을 떠난 종교는 한마디로 생명력을 잃어버린 종교이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최태민 목사-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 하야, 퇴진을 요구하는 민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오방과 악령, 그리고 사이비 종교와 자유롭지 못한 박 대통령 감싸기에 모든 힘을 결집했다. 그리스도인 누가 보아도 이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단체의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집회에 여지없이 목회자들이 중심에 섰다. 그리고 박 대통령을 감싸는 글을 SNS를 통해 퍼 나르기에 바빴다. 나라를 걱정하기 보다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비난이다. 오히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수백만명의 촛불을 ‘사탄’, ‘빨갱이’, ‘용공’, ‘좌파’로 규정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사이비 교주 최태민 목사와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사실 한국교회의 지도자 상당수가 최태민 목사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최태민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도 받았다. 그리고 지프차에 십자가별을 달고 다니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사태가 불거지면서, 최태민 목사의 발아래 무릎을 꿇은 목회자들의 면면도 속속 들어나고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일부 목회자는, 최태민 목사의 잘못에 대해서 비난하면서, 오방과 악령에 사로잡힌 청와대를 감싸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태민 목사가 목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당연한 행동이다. 문제는 이들이 주류를 자처하며,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계절, 밤마다 번쩍이는 교회의 십자가탑, 성탄절을 축하하는 오색찬란한 네온 불빛은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자, 떠돌이, 농민, 노동자, 병신 등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예수님을 전기로 고문하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한다.
분명 예수님은 호화로운 교회당에 오시지 않았다. 호화찬란한 네온에 오시지 않았다. 말들의 밥통인 말구유에 오셨다. 아니 가난하고, 소외되고, 미천하고, 병들고, 떠돌이, 농민들 속에 오셨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고발돼 예루살렘서 고난을 당하셨다.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은 자신들이 배포한 자료에서, “그동안 한국언론은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혹은 권력집단에 의해 조종되면서, 권력에 대한 감시자이기보다는 권력의 공모자, 호위자로서 기능해 왔다. 또한 언론은 사회의 감시자이자 비판자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윤리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대중으로부터 불신과 존경을 받지 못하고 김영란법 적용대상자로 법적인 구속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에 오신 예수님

이 지적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지적에 앞서 기독교언론포럼은 권력과 함께 성장해 온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동언론포럼은 “교회는 사회가 정직과 신뢰, 정의를 추구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런 종교적 기능을 한국교회는 회복하고 이 성경적인 사회적 정의의 기준을 제시해주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즉 하나님이 생각하신 세상을 만드는 것을 충실히 도와야 할 것이다”고 교회적 언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으나, 말과 행동이 다른 격이다.

또한 언론포럼은 국정농단의 중심에 있었던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 일가에 대한 일반 언론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동언론포럼은 한국교계 언론들이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 일가의 비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을 심도 있게 취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부 목회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한국교회는 최태민 목사와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핵심은 최태민이 ‘목사다’, ‘아니다’가 아니다. 한국교회 언론포럼은 한국교회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당시 한국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총회장이었던 최태민 목사가 만든 구국선교단과 구국십자군에 참여하면서, 함께 한국교회를 농단하고, 최태민 목사의 권력과 돈, 그리고 발아래 엎드렸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반통일적이고, 반그리스도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최태민 목사가, 목사가 ‘맞다’, ‘아니다’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교회는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있어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최태민 목사에게서 안수를 받고, 그들이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으며, 엄연한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범죄하고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것은 가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교회 안에서 ‘김영란 법’처럼 많이 회자되는 말이 없다. ‘김영란 법’은 언론인과 선생님, 정치인들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돈에 길들여진 한국교회, ‘돈을 신’으로 만들어 버린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닌지(?) 돈과 권력에 길들여진 목회자들은 자신에게 자문해야 보아야 하지 않을까(?)

권력과 결탁해서 부자가 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한다. 교회는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나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가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용납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과 십자가를 통해 이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때 비로써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의 해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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