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경 욱 목사

매년 성탄절이면 거리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세상에 넘쳐난다. 성탄 즈음은 한 해의 끝자락인 연말연시를 코앞에 둔 시기라 자연스레 한 해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올해 성탄절은 어느 해보다도 힘겹고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란 전망이 높다. 일명 최순실게이트로 온 나라가 혼란과 충격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렵고 한파가 몰려오는 시기에 나라의 우환까지 겹쳤으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성탄절이면 시내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저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던 성탄절 분위기가 올해는 많이 반감될 것 같다.

계속된 경제불황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힘겨워지고 안 그래도 얇던 지갑이 더욱 얇아지고 있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상인들도 장사가 안 된다고 울상이다. 연말이라 하지만 당장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어 낼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 대다수 서민들이 처한 먹고살기 바쁜 현실이다.

그럼에도 일부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명품점과 백화점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비싼 고가 상품도 날개 돋힌 듯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사치스럽게 차려입은 고객들이 백화점에 줄을 잇고 도로는 항상 고급 승용차로 붐빈다. 백화점 인근이 상습적인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 같은 양극화 현상이 올해 성탄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잘사는 자들과 못사는 자들로 나뉘어 각기 다른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부자만을 위한 정치에 매달려 있어 새해에도 그다지 서민들이 기대할 만한 정책이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정치권은 온통 최순실게이트와 탄핵정국에 휘말려 있다. 어찌 보면 여당이고 야당이고 국민들을 위한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된 당리당략에만 매달리는 모습이다. 국민을 위한 모습은 온데 간데 찾아보기 어렵다.

최순실게이트가 터져 나온 것도 가만히 살펴보면 최순실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비선실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이 너도나도 뒷돈을 지원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국회와 정치권이 눈 먼 소경처럼 모른 채 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담합이나 카르텔이 형성되지 않고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잘못된 인식과 관행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리그에 서민이나 국민들이 안중에나 있겠는가. 게다가 이런 풍조가 교회마저도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온 거리가 촛불로 넘쳐날 때에도 교회는 골방에서 기도하며 촛불을 현장에 나서지 않았다. 일부 진보 교계에서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침묵하는 대다수 한국교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 같다.

이렇게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지금, 성탄절을 맞이한 교회마저 불을 끄고 조용하기만 한 것 같다. 이래서는 대체 누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분위기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성탄절이 부자들을 위한 축제일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만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지 모른다.

이런 성탄절을 생각하면 암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타락했단 말인가. 누가 거룩한 성탄절을 희망이 아니라 좌절과 근심으로 가득한 날로 만들었을까. 이런 질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어찌 보면 교회는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한국교회에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복음이 없고 텅 빈 건물만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거리에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구호의 목소리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혼란한 국정 속에서 혼탁한 세상 속에서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행동하는 모습으로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예장 대신(백석)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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