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2월까지 신사불참배의 이유로 기독교계 학교를 폐교시킨 총독부는 여세를 몰아 교회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회유와 강압의 악랄한 수단을 썼다. 여기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제의 강압과 회유정책에 넘어갔다. 한마디로 한국개신교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신사참배에 동참했다. 1938년 9월9일 장로교 총회를 최후로 일본 국가주의에 굴복한 한국교회는, 씻을 수 없는 범죄를 하나님 앞에 저질렀다. 또한 한국교회는 신앙의 자유와 신앙의 양심을 일제에 유린당했다.

신사참배, 하나님께 배교행위

신사참배는 하나님을 배반한 배교행위 임에 틀림없다. 장로교 평양노회는 1938년 2월 9일 최초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인정하고, 실시했다. 뒤이어 동년 9월 9일 장로교 총회가 개회될 때까지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총독부는 친일기관지인 ‘평양기독교친목회’가 제공하는 정보와 건의에 따라 전국장로교가 신사참배를 시행토록 하기 위해 기독교친목회가 꾸민 각본대로 평양, 평서, 안주노회의 대표를 불러 신사참배 결의안을 제안, 동의, 제창토록 하는 각본을 꾸몄다. 그리고 내약을 받았다. 1백여명의 고위경관과 수 십 명의 무술경관의 포위 속에서 시작된 장로교 총회는 서기의 성명서 낭독과 친목회원의 신사참배 즉시 실행의 긴급동의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당시 신사참배를 반대한 선교사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당시 평양노회장 박응률은 평양, 평서, 안주 3노회 32명을 대표해서 “신사참배는 일본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성명서를 제출하고, 평서, 안주노회 노회원들의 제청을 받아냈다. 블레어를 비롯한 황해노회 장흥진, 빌 등의 선교사는 장로교 헌법에 위배된다며, 반대 결의문을 총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일경의 압력에 의해서 상정조차 못했다. 이날 부회장 김창길의 안내로 평양신사를 참배했다.

감리교는 이에 앞서 9월 3일 총리사 양주삼의 이름으로 신사참배 결행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감리교는 천주교회와 함께 일제에 자진 굴복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가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의 보조에 맞춰 내선교도 일체라는 명분을 내걸고, 기독교 내선일체, 황국신민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써 하나님께 배교행위를 범했으며,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송건호 <한국현대사> 신학연구소)

이는 곧 조선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는 일인들도 참여했다. 교파주의가 뿌리를 내린 한국개신교가 처음으로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하나가 되었다. 이 연합회에 솔선해서 참여한 한국측 인물은 정춘수를 비롯하여 김우현, 차재명, 구자옥, 김종우, 원익상, 장홍범, 윤치호, 이명직, 윤치호, 김활란, 신흥우, 오경선, 유옥겸, 이동욱, 함태영, 황종진 등이다.

이밖에도 김활란은 애국여자단을 조직, 조선의 여성들에게 정신대로 나갈 것을 강연하고 다녔으며, 정춘수를 비롯한 기독교지도자들은 청년들을 향해 일본군에 입대할 것을 강연했다. 또 이들은 교회의 종을 떼어 전쟁물자로 내놓았으며, 일본군 전쟁 물자를 위한 헌금도 아낌없이 내 놓았다. 지도자들 중 개인적으로 항공기를 헌납하기도 했다.

 

맨몸과 맨손으로 일제의 총칼 앞에 항거한 비폭력저항운동
새로운 하나님나라 도래를 갈망하던 한민족의 자주독립운동
3.1만세운동은 기독교와 긴밀한 관계, 피압박 민족에게 희망

정신대 할머니를 향한 막말(?)

이밖에도 기독교청연회를 비롯한 문인단체들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문화정치, 동화정치에 굴복했다. 여기에는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해석하고, 황국신민으로 당연한 의무임을 강조했다. 이것도 모자라 한국의 기독교세력은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찬송가와 공과를 분열시켰다. 일본 식민지세력과 결탁, 6개의 재단법인을 얻어 내기도 했다. 이런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가 지금도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예수님을 호화로운 교회당, 시멘트 건물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교회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가야 한다. 3.1만세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이 민족의 아픔이 있던 곳으로 나갔듯이 말이다.

특히 지식인 대부분은 일제의 폭악에 대해서 세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민족적 양심은 살아 있으나, 저항할 용기가 없는 자이고, 다음은 일제에 아부하며, 권력의 주변을 맴돈 자이다. 3.1운동이후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이 길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민족적 양심을 지킨 파이다. 이들 중 한파는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형무소에 갖고, 한파는 완전히 세속을 떠나 은둔생활을 했다.

8.15 해방이 몇 년 만 빨리 왔어도, 지도층 인사들이 친일파라는 비난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가의 말은 사실과는 다른 말이다. 친일파는 한일합방 이전부터 있었으며, 지금도 친일파의 활동은 멈추지를 않고 있다. 일본군국주의 부활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정신대문제 등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는데도, 한국개신교 친일세력들의 참담하고 쓰레기 같은 말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또한 일본차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언론들은 일본기업체들을 사정없이 소개하고 있다. 민족의 자존심이 구겨져도 한참 구겨졌다.

여기에다 요즘 일고 있는 일본의 패권주의 부활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질서를 파괴하는 결과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식민지세력에 의해 끌려간 정신대 할머니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일본 우경화의 바람은 대한민국을 향한 또 하나의 침략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기독교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 정신대에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향해 내뱉는 모습은, 한마디 한심스럽다. 모 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한 목사는 대중집회에서 “일제시대 정신대로 끌려갔던 소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자원했다”고 말했다. 이에 300여명의 목사와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정말 이것은 아니다. 이들이 바로 십자가와 태극기를 앞세운 한국기독교 목회자이며, 교인이라는데 부끄럽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가 이렇게 막말을 내뱉는 반애국적인 목회자의 말을 듣고 교회에 나가겠는가(?)

영화 <귀향>을 보라. 왜 정신대 할머니들이 교회를 찾아가지 않고, 무당을 찾아가 자신의 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는가(?) 그 대답은 한국기독교 목사와 교인들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진정한 한의 사제는 목사도, 스님도, 신부도 아니었다. 진정한 한의 사제는 무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한국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영화 <귀향>과 <눈길>을 좌편향 영화라고 한다.

3.1만세운동 역사적 재평가 절실

3.1만세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운동은 피압박민족의 새로운 나라를 향한 도전이며, 출발이었다. 한국기독교계에서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행사와 함께, 교회사적으로 재평가의 움직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3월에 일어난 3.1만세운동은, 피압박민족의 해방과, 평등과 자유의 새로운 나라를 향한 희망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고 모세에게 명령했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서 전체를 지배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제국에서 해방시켰다는 신앙고백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신앙이다.(출애굽기 3장 7-10절)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제국의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앗시리아와 바벨론제국에 의해 좌절됐다. 나라 잃은 백성이 되고 말았다. 이집트, 앗시리아, 페르시아, 시리아, 로마와 같은 대제국에게 짓눌려서 1천여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아우성쳤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갈망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민중을 선도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그 후 예수님이 나타나 “때가 다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외쳤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억압과 수탈을 당하는 백성들 속에서, 이들과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98년전 전국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 역시 일본식민지세력의 수탈과 억압에 항거하여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일제의 총칼에 죽임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찾으려는 민족자결의 민족운동이었다. 아니 힘없고 천박한 조선백성의 하나님나라운동이었다. 그것은 3.1만세운동이 길삼해서 가족들에게 옷을 입힌 기독여성, 밭을 갈아 가족들에게 밥을 먹여주던 기독농민, 민족의 희망인 학생, 청년들이 중심된 민족적 항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기독교가 표방한 이념 새로운 희망

낡고 무력하고 경직된 조선왕조가 수명을 다해 갈 무렵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남녀평등과 사민평등의 이념을 앞세웠다. 타락한 이조 말엽의 봉건왕조에 비하면, 기독교가 표방한 이념은 새롭고 희망에 찬 것이었다. 기독교는 급속히 서민 속으로 파고들어갔으며, 새로운 문물과 이상을 추구하던 지식인들이 앞을 다투어 교회로 몰려 왔다. 그것은 기독교선교가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명을 다한 이조 봉건 왕조의 압제와 수탈에 신음하던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것은 당연하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또한 이들 중 많은 여성이 여성지도자로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3.1만세운동은 기독교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 독립선언문은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이란 비슷한 문구를 사용했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 시대가 오누나. ……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촉구하누나 ……”

새 나라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열망이 그대로 배어 있다. 또한 3.1만세운동에 기독교인들이 열렬히 참여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시 그리스도인은 천주교까지 합해서 31만8천명이었다. 1919년 3월부터 10월까지 장로교 교역자 336명이 연행되었으며, 남신도 2.126명, 여신도 531명이 체포되었다. 당시 장로교 목사 169명, 목사후보생 102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장로교 지도층 전체가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3.1만세운동은 민족사적, 교회사적으로 재평가 되어야 한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지지리도 못난 조선왕조를 무너트린 것은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던 이 땅의 백성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세력의 통치였다. 외세에 의해 나라마저 잃고, 이민족에게 차별과 수탈을 받아야 했던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을 외쳤다. 맨손으로 일본식민지세력의 총칼에 맞섰다. 예수님의 비폭력운동을 벌인 것이다.

3.1만세운동, 비폭력저항운동

분명히 3.1운동은 조선 백성의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하나님나라 도래를 갈망하던 한민족에게 3.1만세운동은 역사적 큰 의미를 갖는다. 독립선언서는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라”라고 선언하면서, 맨몸과 맨손으로 일제의 총칼에 대항했다. 비록 일제의 칼에 몸은 찢기고, 총에 가슴에 구멍이 나 목숨을 잃을망정,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승리를 거두고, 기금까지 그 정신이 살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총칼로 조선백성을 괴롭힌 식민지 세력을 기념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붙들려서 아무 저항 없이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의 삶과 죽음은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며, 평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고난을 통해서만이 하나님나라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로마 제국에서 박해를 받던 교회들도 신앙고백으로 항거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도 말로써 그 시대의 불의와 폭력에 맞섰다.

북한 동포들은 김정은 정권 아래서 자유를 잃고 신음하고 있다. 남한의 국민들은 부정과 위선으로 가득한 불의한 정권을 향해 촛불을 들었다. 남북한이 날카롭게 대처하고 있다. 남북분단의 벽은 높고, 단절은 깊다. 이 땅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3.1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인 남북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평화적인 하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부여한 과제이다.

또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꿈꾸었고, 예수님이 선언한 하나님나라, 새로운 나라에 이르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고난과 죽음을 불사해야 한다. 우리는 용기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십자가 달리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에 갈 수 있다. 조선의 백성들이 그렇게도 갈망했던 새로운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우리의 믿음과 고난을 통해서 한국교회, 아니 한민족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인 3월,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삶, 대한민국 국민의 고난과 삶속에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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