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종교계에 영향을 주는 종교인을 비롯한 기업인, 문화예술인, 금융인, 사회단체 활동가 등 10개 분야 설문조사에서 기독교계는 단 1명만이 이름이 올랐다. 그것도 교회재정과 관련해서 송사에 휘말린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여서 별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1989년부터 매년 가을에 실
80년대 중반으로 생각된다. 국민들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이 오늘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생각 있는 국민들은 일본의 군국주의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은 ‘한?일 관계의 새 시대’라는 주제로 보도했다. 이것을 보고 생각 있는 국민들은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 일본의 군화가 우리 땅에 다시 상륙하여 횡포를 부리는
올해는 일본 식민지 압박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은 지 71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일제 36년의 치욕스러운 날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자신에게 자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치욕의 36년의 세월을 잊은 오늘 대한민국의 거리는 일본자동차들로 넘쳐나고, 국산차들을 타고 다니는 애국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이단논쟁이 뜨겁다. 교인들 역시 이단 및 사이비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문제는 누가 이단이며, 누가 누구를 이단으로 정죄하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교회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역사의 현장과 거리가 먼데, 누가 누구를 이단 및 사이비를 가려낼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분명 이단은 성경과 다를 때, 붙여
오늘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타락한 성직자들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타락한 중세교회를 방불케 하고 있다고 평신도나, 목회자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흘러나온다. 500년전 종교와 권력이 야합한 종교의 타락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를 못했다. 당시 사제들은 평신도보다도 못한 윤리적인 삶을 살지
지난 14일 프랑스 니스 해변 불꽃축제에서 구경 나온 어린이 10명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 84명이 또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이 같은 테러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세계인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의 소리’가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 이 절규를 들으신 하나님은 분명하게 산자인 우리를 향해 묻고
지난 4.13 총선에서 한국교회의 정치세력화가 좌절된 가장 큰 이유는 루터가 주창한 ‘정교분리’이다. 루터의 정교분리는 권력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고,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루터의 ‘정교분리’는 종교와 권력이 야합, 타락해 가는 교회를 보고, 극약처방으로 내놓은 것이다. 당시 중세교회는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부패할
6월 한달동안 한국교회는 6.25 한국전쟁 제66주년, 분단 71년을 맞아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6.25상기 기도회를 일제히 드렸다. 특히 금년 6월 6.25상기기도회는 남북한 민족의 화해의 기도회라고 하기보다는 60년대나 볼 수 있었던 반공궐기대회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것은 6월을 맞아 각 교회에서 외쳐진 설교 역시 여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소속 목회자들이 연루된 일탈 사건이 잇따르자 앞으로 발생하는 목회자 일탈 사건에 대해 일벌백계로 다스리기로 했다고 한다. 뒤늦은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렇게 교단 차원에서 엄포를 놓는다고 기감 교단, 나아가 한국교회 곳곳에 만연된 부조리들이 한 번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일부 목회자들의 도 넘은 비위와 악행이 교회의 위상을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다. 그리고 생명은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고 귀하다. 성서는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중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의 몸에 털끝만큼의 상처를 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 세계의 그 어느 피조물보다도 소중하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요즘 한국교회 교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과거 자신 있게 어느 교회를 출석하는 교인이라고 말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려, 각종 범죄에 기독교인들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사건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신학원 출신의 목사후보생이 연약한
오늘 우리사회는 요지경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것은 모두가 인간성을 상실한데서 비롯되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심지어 예수님의 인간화 실현이 좌절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오늘 우리사회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파동은, 인간화 상실이 불러온 살해사건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이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함에도
한국교회 내부에서 동성애를 둘러싼 소모적인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3년 동안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야 한다는 측과, 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측 사이에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한국교회 내부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동성애에 대해서 별반 관심이 없는데도, 한국교회 내부에서 찬반논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4.13총선에서 또 기독교정치세력화가 좌절됐다. 그것도 기독정당이 2개로 분열되면서, 기독교정치세력화가 좌절되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마디로 분절된 상태에서 한국교회가 목표한 기독교정치세력화가 좌절된 것이다. 이제부터 4년 동안 한국교회가 한목소리로 반대해온 반기독교적인 동성연애법을 비롯한 간통법 부활, 이슬람확산 저지,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법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무서운 나머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것은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이것은 교회와 나라, 그리고 가정이 무너져도, 목회자 자신만 괜찮다는 안일주의에서 나온 잘못된 생각이다”이 말은 지난 5일 모 정당의 지도자 모임에서 두 번에 거쳐 야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모 장로의 발언으로 목회자들이 안일주의에
4.13총선이 시작됐다. 선거가 축제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지 여지없이 선거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기분 좋게 선거 이야기를 하다가도,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면, 험악한 분위기가 갑자기 조성된다. 또 누구인가 중재자가 나타나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다툼이 있다가도 화해하는 모습은 누가보아도 아름답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기다리던 ‘귀향’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태평양전장의 한가운데서 일본군의 희생양이 되어 돌아오지 못한 20만명의 대한민국 딸들의 한을 담고 있다. 개봉된지 얼마 안 돼 관객 260여만명을 돌파했다. 그것은 영화가 잘 만들어져서가 아니다. 또 보고 싶은 영화여서가 아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농락을 당하며, 끔직한 고통과 아픔을
4.13총선이 다가오면서, 기독교정당과 기독교인,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정교분리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정교분리정책은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재퍼슨이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서 내세운 정책임에 틀림없다. 내용은 정치가 교회의 활동에 간여하지 말 것,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지 말 것, 정치는 교회에 해가 되는 법을 만들지 말 것 등을 주요
남북한이 하나 되는 평화통일의 길은 멀고 험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는 한반도 전역을 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맞서 우리정부와 미국이 사드미사일 배치를 비롯한 개성공단 철수 등 초강수를 놓아 응수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의 비핵화계획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한의 보수적인 정당과 보수적인 인사들은 남한도 핵무장을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