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는 수많은 지도자가 있다. 지도자 중엔 좋은 지도자, 능력 있고 바른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잘못된 지도자도 있다. 2023년 2월에 전 세계가 놀라고 가슴 아파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일어난 7.8도의 강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지진을 막을 수는 없으나 한 지도자의 책임 있고 올바른 지도력으로 시 전체가 무사했던 도시가 있었다. 이곳이 바로 튀르키예 에르진시(市)였다. 이 시를 가르켜 ‘기적의 도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준비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을 맞아, 한국교회도 저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사순절을 지키고 있다. 우리는 이 기간 경건과 절제의 삶을 살면서, 십자가를 지시고 온갖 수모와 채찍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이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난행군에 동참한다. 또 회개와 각성, 갱신을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루고, 주님의 자녀로서 바른 다짐을 하면서 신앙의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사순절의 의미가 조금
부활절을 앞둔 40일간 말씀과 묵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절기인 사순절을 맞이했다. 각 교회는 저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절기를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행군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는 사순절 기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한 것을 묵상하며 경건한 삶을 보내야 한다. 개인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참회와 금식, 단식 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이 기간 우리는 말씀에 더 집중해야 한다. 매일 한 구절씩이라도 묵상하며
부활절을 앞둔 40일간을 말씀과 묵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사순절(四旬節)’을 맞이했다. 올해 사순절 기간에는 부활절에만 초점이 맞춰져 다소 잊혀 지기 쉬운 사순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 땅에 소외된 이웃을 위해 한국교회가 온 맘을 다해 나서주길 기대한다. 오늘 전 세계는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이 아픔을 겪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는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시 유럽은 물론, 아시아, 미주에 이르기까지 경기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했다. 규모 7.8의 강진이 덮쳐 무려 4천여명(6일, 현지시간)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각종 국제소식에 따르면 튀르키예에서 2천921명이 숨지고 1만6천여명이 다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시리아에서도 정부가 통제 중인 지역의 사망자는 711명, 부상자는 1천431명, 반군 통제 지역에선 733명이 사망하고 2천100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현지 기상까지 좋지 못해 사망자와 부상자는 지금보다 곱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안타까운 심정이다. 더욱 침통한 것은 이번 지
계묘년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 불청객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치닫는 경기침체는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보기 힘든 오늘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가 한마음 한 뜻으로 서로를 안아주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끝이 보이지 않고, 답이 없어 보이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이해하면 분명 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개인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포용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를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토끼가 껑충껑충 뛰어 도약하듯이, 우리 사회도 힘차게 뛰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문제들이 다 풀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새롭게, 높게, 멀리 나아가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 2022년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선정됐었다. 말 그대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흔히 새해가 밝으면 금연, 금주, 다이어트 등 저마다 원대한 목표와 계획을 세워 도전한다. 하지만
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 주님의 은총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온전히 세워지길 소망한다.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가 말끔히 사라지고, 장기적 경기침체가 해소되어 모두가 행복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무엇보다 갈 곳을 몰아 방황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초심을 되찾아, 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푯대와 같은 역할을 다하길 진심으로 소원한다. 2023년은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세계 경제 10대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다. 자영업자들의 고심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주택가격 폭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성탄절을 맞아, 어둠에 처한 우리 세상이 빛으로 환하게 밝아지길 기대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빈부격차, 노사갈등, 여야의 극한 대립, 경기침체, 전쟁과 기아, 이상기후 등 온갖 절망적 상화에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로 인해 희망과 소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길 바란다. 솔직히 오늘 전 세계는 전쟁과 혼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각종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깨어지고 갈라져 있다. 모두가 희망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어둠의
2022년도 1개월 남짓 남았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더불어 대통령 선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여기에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기쁨의 순간도 있었는가 하면, 이태원 참사와 같은 슬픔의 조각도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또 누군가에는 절망과 슬픔으로, 짧다면 짧고 길면 긴 2022년도 이렇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만 누구보다 더 혹독한 겨울나기를 앞둔 소외된 이웃들에게는 이 겨울이 잔혹하리만큼 싫다. 거리에 불 밝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경쾌한 캐럴도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오늘 우리는 ‘정이 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인정이 메말라 당최 ‘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캠페인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웃과 나눌 줄 알며, 이웃의 아픔에 함께 동감하고 함께 울어주던 민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세계 경제 10대국가를 내달리는 오늘, 감사와 배려는 반비례하고 있다. 1등만을 강요하다가 보니 나머지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이상 감사와 배려가 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볼 수 없다는 점에 억장이 무너진다. 솔직히 오늘 ‘감사’는 물질에만 국한되어 버
믿기 힘든 일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찾은 젊은이들이 폭 5m에서 3.2m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골목에서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오전 6시 기준 사망 156명, 부상 197명 등 사상자가 총 353명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우선 희생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부상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길 소망한다. 돌이켜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도, 이번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숱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한 몸부림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주일 505주년을 맞은 오늘, 한국교회의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말로는 변화를 외치지만, 행동은 여전히 세속적인 물결 속에 머물러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교회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종교개혁주일을 맞아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세속적 물질추구에 있다고 본다. 밤하늘을 수놓은 뾰족하게 솟은 십자가탑의 위용은 하늘을 찌른다. 점점 더 크고 웅장하게 지어지는
길고 길었던 코로나19 팬데믹의 터널을 지나, 사회는 물론 한국교회도 이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풍파는 개교회 30% 성도들을 가나안 성도로 바꿔버렸으며, 수많은 교회들의 문을 닫게 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이미지마저 실추시켜버렸으며, 마치 온갖 잘못의 주체가 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총체적 위기에 처한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각 교회들의 현장예배가 회복되는 등 멈춰있던 한국교회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침체된 교회부흥과 성장을 위한 대책마련에
2022년 장로교 가을 정기총회도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다소 소극적으로 치러졌던 최근 1~2년 사이의 총회보다, 이번 총회는 적극적이며 활발하게 진행됐다. 모처럼 정식대로(?) 열린 총회에서 각 교단은 저마다 산재되어 있는 다양한 안건들을 다루며, 교단의 새로운 회기를 이끌어갈 임원을 선출하는 등 깨어있는 총회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제 이 흐름을 멈추지 말고, 이 기세 그대로 쭉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솔직히 작금의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은 녹록치 않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피해를 직격탄으로 맞은 한국교회다. 코로나19
추석 명절을 전후로 장로교 9월 정기총회가 일제히 개회된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 여파로 온전히 치러지지 못했던 총회가 올해는 제대로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한 각 교단의 노력에 더해, 이를 실천적 행동으로 옮겨줄 신임 임원들을 선출하기 위한 움직임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찌 됐든 올해 장로교 총회는 멈춰있는 한국교회의 동력을 가동시키고,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에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희망의 총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그러기 위해선 올해 각 교단에서 구태에
오늘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살률이 높다. 세계경제 10대 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세계1위다. 이러한 불명예는 1등만을 강조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각종 부작용들로 인해,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못 미쳐 낙오되거나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겉으론 초 인류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속은 텅 빈 강정과도 같다. 더욱이 출산율마저 갈수록 낮아져 삶보다 죽음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어 씁쓸하기만 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수도권이 연일 내린 폭우로 인해 물바다가 됐다. 장마전선은 끝났다는 날씨예보가 무색하리만큼, 400mm에 육박하는 기록적 폭우로 수도권 곳곳이 모두 잠겼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번 비로 사망 8명, 실종 6명, 부상 9명(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9일 오전 11시 기준) 등의 인재피해가 났다. 여기에 더해 시설 피해도 만만치 않다. 이 또한 집계를 보면 시설 피해는 서울과 인천, 강원, 경기 등 765건(공공 16건, 사유 749건)으로 잠정 집계됐다는 보도다. 말 그대로 수도권 전역에 흩뿌린 물폭탄으로 소중한 생명과 재산에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다. 오락가락한 장마덕분에 찜통더위가 기승이다. 코로나19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움츠렸던 교회들이 모처럼 활기를 찾아 분주하다. 저마다 여름성경학교, 여름수련회, 여름 집회 등 갈급한 영적 충만함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닫혀있던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하다. 이번 여름 쉼을 통하여 각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목회자들이 영육간의 강건함을 얻고, 나아가 멈춰있는 부흥 성장의 시곗바늘을 힘차게 다시 돌리길 소망한다. 다만 각 교회들은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
제헌절 74주년을 맞았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 공포한 것을 기념해 정한 국경일이다. 비록 5대 국경일 중 유일하게 법정공휴일이 아니라 국민적 관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지만, 자주독립의 떳떳한 민주국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한 결코 잊지 말아야할 날이다. 더욱이 탈법, 초법을 넘어 국가의 근본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마저 무너뜨리려는 위기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1항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2항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