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햇살무르팍쯤 바지 걷어 올리고도랑물에 들어가면 겨우내 얼음장 밑 돌미나리 숲에 기대 살던, 여윈 송사리도 피라미도 보겠네, 얼음장 밑에서 겨울 다 견뎌 낸 작은 목숨들이 은빛 비늘 파르르 몸을 옮기겠네, 송사리도 피라미도 얼음 풀린 도랑에서 몸을 옮기며,은빛 비늘 봄 햇살을 되비춰 내는 반짝, 반짝 되비춰 내는 은빛 햇살을 보겠네. 모처럼 하늘에 ‘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세상이 어두우면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을가득히 이끌고 오지더 어두워 봐별들은 더 초롱초롱 빛나지하늘이 제대로 머리 위에 뜨면지상은 비로소 길이 열리고숲들은 일렁이기 시작하며호수들도 수면 위를아름다운 음표로 반짝거리지사람 산다는 게 별거야시시때때로 번져오는하늘의 말씀을 귀 담아 듣고지상에 사무치며 흐르는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거야세상이 어두울수
다 시희망찬 사람은그 자신이 희망이다길 찾는 사람은그 자신이 새 길이다참 좋은 사람은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사람 속에 들어 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아직 찬 바람이 불고 햇살 줄기가 가느다란 겨울이다. 예보만 믿고 얇게 입고 나가면 자칫 한기가 들어 감기에 걸리곤 한다. 혹한의 때를 살고 있지만 언 땅밑 뿌리들의 움직임은 부지런하리라.
사랑법 · I말로는 하지 말고잘 익은 감처럼온몸으로 물들어 드러내 보이는진한 감동으로가슴속에 들어와 궁전을 짓고그렇게 들어와 계시면 되는 것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비록 살고 있는 현실이 어둡더라도 어김없이 저녁은 찾아오고 긴 밤이 지나면 찬란한 태양이 떠 오른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있기에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눈발이 흩날리는 계절이 오간다. 모
들국화 들녘의 이름으로 태어난 들꽃가을이 이름으로 태어난 가을꽃친 • 외가 출신 성분이천생 야생시인 웃음 스민 울음울음 깃든 웃음 누리며우리 향기로웁자눈부시지 않게 -『시인수첩』 18년 겨울호에서 * 유안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숙맥 노트』 등 17권 시집 상재.< 월탄문학상>
눈눈은 가볍다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내리는 눈은 포근하다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눈이 내릴 동안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누구나 눈에 얽힌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어떤 이는 아련한 사랑이 떠 오른다 하고 어떤 이는 눈썰매가 생각난다고 한다. 혹은 눈길에 엉덩방아를 찧었거나 추돌사고 같은 기억도 떠 오르리라. 그런데 나는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지금은 열을 가스나 전기 등을 사용해서 구한다. 그러나 오래되지 않는 조금 전까지 연탄이 주종을 이루었던 때가 있었다. 에너지를 다 사용한 연탄 찌꺼기를 연탄재라고 한다. 이것은 쓸모가 소진된 물건이 되었다는 뜻이다. 결국 내버려야만 한다. 이 시에서는 연탄재란 사용용도가 끝
참 예쁜 발우예 그리 똑같노.하모, 닮았다 소리 많이 듣제.바깥 추운데 옛날 생각나나.여즉 새각시 같네 그랴.기억 왔다 갔다 할 때마다아들 오빠 아저씨 되어말벗 해드리다가 콧등 뜨거워지는 오후링거 줄로 뜨개질을 하겠다고떼쓰던 어머니, 누우신 뒤 처음으로편안히 주무시네.정신 맑던 시절한 번도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가지런하게 펴고 무슨 꿈 꾸시는지담요
늘 곁에 있는천리만리 멀리 있어도 늘 곁에 있는가장 고요한 밤소리 없이 찾아오는영혼의 등불을 켜고 얼굴을 비추는말없이 바라보면서 눈으로 말하는천리만리 멀리 있어도 늘 곁에 있는-시집 『의사도 메스도 없는 병원』에서* 최진연: 『시문학』 등단. 시집 『용포동 1박』 등 16권 상재. 한국크리스천문학상. 시문학상 말하려는 대상이 생략되어 있는 작품이다. 앞부분
지구의 눈물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어제는 혀에 닿는 과육 맛에만 취해수밀도를 먹으면서 몰랐지사과 배 포도알까지 둥근 몸은 모두달고 깊은 눈물왕국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맛 없을 때마다 그 왕국에 간다 사람 몸 저 깊은 곳생명의 강이 되는 눈물,그리하여
고통에 대하여세상에서 제일 아프다문고리 고치다가못 대신 손을 찍었는데쇠 부품 하나 휜 것도사람을 부르면, 새로 사 끼우면나의 쓸모는 어디 있나어제부터 아팠던 것처럼새까맣게 오늘이 아프고내일이 어떻게 아플지 보이는 건고통이 고통보다 고통스런 이유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나는 먹을 수도 잘 수도 깰 수도 없이총기난사, 대량살상 기사를 보다지구 반대편을 닫다, 깜
마음을 위한 기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숲속의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하늘을 담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밤새 내린 첫눈처럼 순결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사랑의 심지를 깊이 묻어둔 등불처럼따뜻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가을 들녘의
좋음 등이 아프다면네 십자가의 무게는적당한 것이다 -『창조문예』 18년 9월호에서 *조예린 시인 : 『시와 시학』으로 등단. 편운문학상. 시집 『나는 날마다 네게로 흐른다』 등 3권 상재. 십자가는 가시적이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관념적이고 포괄적이다. 십자가는 희생 헌신 봉사 또는 죽음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정치가들은 자기 욕망을 실현하면서
하늘 우체국너희들 걱정하지 말아라난, 잘 있다 건강하다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여기가 천당이다 천당이다좁고 주름진 방에서 어머니는전화를 주신다 이 외진 가을 저녁에게까지 주여, 지난 여름은 참 무더웠습니다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폭염이 연일 지속되어 모두 열대야를 견디고 견뎌내야 했다. 착한 태풍 솔릭이 지나가고 나니 가을 장마가 찾아와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품비 맞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어디 안길 수 있을까비는 어디 있고그들이 만드는 품은 또 어디 있을까나무는 어디 있을까-시집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에서 * 정현종 : 연세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공초문학상. 경암학술상 (예술부문) 시인의 학부 전공이 철학이었던 전기적인 면을 보아 형이상시의 특성을 전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사랑 아니고 사탕처음 하나를 먹었을 때세상에 이런 맛이 있나, 할 정도로달콤하고 맛있었다계속 입에 넣고 있다 보니이도 썩고 혀도 얼얼하고혈당도 놓아졌다빨리 먹어버리려고 깨물다이가 부러진 적도 있고엉겁결에 삼켰다가목에 걸려 죽을 뻔도 했다끝까지 녹여 먹다 보니 씁쓰레한 맛이 돈다그렇다고 새로 하나 생긴 것을남에게 줄 수도 없고버릴 수도 없고.-2018년 한국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그래도 사랑의 불울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뇌출혈로 쓰러져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힘을 내어 웃으며
여름날 숲속에 들면여름날 숲속에 들면장대비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 허물을 벗고 싶다아마존강 독오른 아나콘다 뱀이 되어죽음의 향내 빨갛게 일렁이는 산딸기 밑으로허리 구부려 한여름 몽정기를 앓는 겁 없는 열세 살 소년을 물어버리고 싶다사르르 두 가닥 혀로 설익은 가슴팍을 핥고태양을 우러르는 마고할매의 딸이 되어파란 불꽃 일렁일 때까지 껴안아주고 싶다송곳니 깊이
해, 저 붉은 얼굴아이 하나 낳고 셋방을 살던 그 때아침 해는 둥그렇게 떠 오르는데출근하려고 막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뒤에서 야야! 야야!아버지 목소리 들린다“저어—너—, 한 삼 십 만 원 읎겠니?”그 말 하려고 엊저녁에 딸네 집에 오신 아버지밤 새 만석 같은 이 말, 그 한 마디 뱉지 못해하얗게 몸을 뒤척이시다가해 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