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등 남북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남북은 지난 9일 2년여 만에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만나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 뿐 아니라 고위급 대표단,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등 대규모 방문단을 파견하는데 합의했다. 

남북은 또한 그동안 끊겼던 군 유선 통신도 즉시 정상 가동키로 했으며, △평창 올림픽 성공을 위한 적극 협력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평화 환경 마련을 위한 공동 노력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민족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 등의 3개항이 담긴 공동보도문도 채택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날로 고조되어 가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 속에서 모처럼 남과 북이 직접 마주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를 일체 거부하고 유엔의 고강도 제재에도 핵단추 위협으로 맞서 왔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돌연 대화의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은 향후 핵개발을 위한 시간벌기와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나 스스로도 한반도 긴장완화를 통한 남북간의 관계개선 의지가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에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남북 대화의 종착점은 한반도의 비핵화로 귀결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무리 평화를 외치고 수 백 번 만나 대화를 나눈들 소용없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전 세계에 자신들의 건재와 평화 의지를 내보이려는 것도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어도 핵무기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니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보다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기 힘들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오전에 우리 측이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데 대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밤에 열린 종결회의에서 강하게 불만을 제기한 것은 우리의 비핵화 거론에 북 최고위층의 확고한 거부 의지가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남북이 회담 한번 한 걸 가지고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핵무기만이 자신들의 체제를 견고하게 지킬 수 있다고 종교처럼 신봉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미국과 주변 강대국들 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그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게 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그에 따라 북한 당국이 자기들 신념의 변화가 일어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만큼 평화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인내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회담 한번으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진정 남북 화해의 길을 걸을 의지가 정말 있는지 아닌지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김정은은 대북제재 국제 공조에 균열을 내고 국제사회에서 대북 온건론을 끌어내기 위해 남한을 고리로 삼아 평화공세를 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이번 회담에서 대규모 방문단과 예술단 등을 파견하겠다 면서도 우리 측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을 보면 일단 평창 동계올림픽을 자기들 체제 선전의 도구로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의지가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단 시작된 남북대화가 북핵 폐기 협상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한이 그 어떤 의도에서건 스스로 대화의 자리에 나온 이상 스스로 판을 깨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온 세계가 남북간의 대화를 지켜보며 기대하고 있기에 어느 때보다 부담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우리 정부가 지혜롭게 이용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끌어낸다면 한반도의 평화 뿐 아니라 세계 평화를 가져오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