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욱 목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성서건강학이라는 책에서 황성주씨는 이렇게 말한다.

“효자 효녀를 둔 부모는 건강할 수밖에 없다. 건강은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고로 부모의 건강이 고스란히 자녀에게 전달되어 효자는 장수할 수밖에 없다.”

어찌 효의 열매가 건강뿐이겠는가? 성경은 또한 효자가 성공적인 삶이라는 축복을 누린다고 약속하고 있다.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 순종할 줄 아는 사람, 어른을 모실 줄 아는 사람,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열심히 부모 공경을 게을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선언 하셨다(막7:9-13)

요즘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 2-3명만 모이면 무서워서 감히 건드릴 수 없더라. 골목길이나 길거리에서 어린 아이들이 담배를 피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어른들이 훈계라도 할라치면 아이들은 겁 없이 어른들을 공격한다. 결국 심한 경우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런 사회가 되었는지 자괴감마저 들 때가 있다.

복과 성공과 출세만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회가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범인지 모른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읽는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신27:16)” 어쩌면 우리 사회는 부모, 곧 어른을 공경하지 못하는 문제 사회화 된 것 같아 아쉽기 그지없다. 어른을 공경하지 못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독일의 수학자인 피터 드리클레라는 사람이 발견한 함수(函數, function)란 변수 x와 y 사이에 x의 값이 정해지면 따라서 y값이 정해진다는 관계에 있을 때, y는 x의 함수라고 합니다. 또 x를 독립변수(獨立變數), y를 종속변수(從屬變數)라고 하는데 열차의 운임은 거리(km 수)의 함수이다. 즉, 거리가 정해지면 그것에 대응하여 운임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상황이 결정될 때 곧 자녀의 상황이 정해지게 되고 자녀는 부모의 함수가 되는 것 이것이 가정에서의 함수가 된다. 나만 생각하고 나의 성공과 나의 출세와 나 우선적 사고, 그 에고이즘이 결국 자녀들을 망가트리는 함수관계를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1889년, 역사를 바꾸어놓은 두 아이가 태어났다. 한 아이는 사촌간인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소년은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 밑에서 성장했다. 그는 16세 때 학교를 중퇴하고 극렬분자가 됐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 또 다른 한 아이가 같은 해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란 소년은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소년의 이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두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만났다. 한 사람은 분노의 독기를 발산했고 다른 한 사람은 평화를 외쳤다. 히틀러는 56세 때 대피소에서 자살해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고, 아이젠하워가 눈을 감을 때는 세계가 애도했다. 상반된 부모의 교육이 두 아이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올바른 신앙과 사고와 건전한 행동으로 가르친 자녀가 세상가운데 빛을 발한다는 중요한 예가 된다.

이제 한국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중요한 과제를 던져 주고자 한다. 가정의 달을 맞아 행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가정의 소중함을 깨우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상관관계, 혹은 교육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어른 공경을 하지 않는 자녀들에 대하여 부모가 채찍을 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교회에서 먼저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지금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는 다시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백석)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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