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순 목사

성탄절이 몇 일 앞으로 다가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 오심에 희망을 갖고, 기다린다. 그래서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이며, 희망의 종교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는 어디에서도 희망이 보이지를 않는다. 그렇다보니 기다림도 없다. 그것은 사람이 지쳐서 쓰러지는 것을 자기에게 매달려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늘 대한민국과 세계를 보라, 이념갈등으로 적대적 관계가 형성되고,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사람은 오늘의 희망 못지않게 내일의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자신을 통해서 희망을 성취하려고 하다 보니, 그 희망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메시아는 오늘도 우리의 곁으로 오고 계신데, 우리가 메시아 오심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한국교회는 로마교회와 중세교회와 마찬가지로 권위와 교리를 지키기 위해 교회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모두가 자기 업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업적에 매몰돼 있으면, 망하게 되어 있다.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업적에 빠져 발벨론에서 70년동안 노예생활을 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과 세계는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선민의식에 빠져 진영싸움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이 진영싸움은 국민들을 곤궁하게 만들고 있다.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진영싸움으로 인해 국민 모두는 국회나, 정부나, 교회에 대해서 희망을 걸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나라만 보더라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힘의 논리를 내세워, 자신에게 매몰돼 세계 각국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갈등을 넘어 중국과의 갈등, 영국과의 갈등, 유럽과의 갈등, 중동과의 갈등, 북한과의 갈등을 일으키며, 모든 가치를 메시야에게 두지를 않고, 맘몬에 두고 있다. 그렇다보니 세계질서는 균열되고 있다. 트럼프가 가진 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오늘 세계의 질서는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쉽다.

가진 자는 항상 아량이 있어야 한다.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아름답다. 진영싸움을 만들어내고, 중심에 있는 인사들은 한민족과 세계민족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박힌 돌들을 빼내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국민 모두는 정치인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갖지 않는다. 선거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민생법안을 처리 하려고 해도, 여당과 제1야당의 인사들이 기득권 때문이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북한동포를 받아드릴 수 없다. 세례요한은 이러한 기득권을 파기하기 위해 ‘독사의 자식’이라며, 기득권에 정면대결하지 않았는가. 세례 요한은 하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따랐다. 주님은 나약해 보이지만 강하시다. 나약함으로 강한 자들과 맞섰다. 그럼에도 세례요한은 나는 그분 앞에서 나약하기 그지없다고 없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 메시야가 오시는데 훼방꾼은 아닌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성서는 세례요한시대 오늘 메시아는 와 있는데, 눈이 어두워 보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참진리와 참평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내 안에,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오늘 교회마다 믿음은 강조되고, 넘쳐나는데,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기적의 예수님만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또한 교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교회는 우리 안에서,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추방하고 있지 않은가. 복음 확장이 이루어지는 교회는 생명력이 넘쳐난다.

이 성탄의 계절에 거리의 청소부, 비정규직 노동자, 해직노동자, 각종사고로 죽임당한 아이들의 부모 등 삶의 현장에서 고난당하는 이웃을 내 마음으로 불러들이자.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이며,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듣자.

예장 합선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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