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현대인들은 모두가 바쁘게 살아간다. 여유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보니 현대인들의 얼굴은 조급함 밖에 보이지를 않는다. 한 제자가 학창 시절 존경하던 선생님을 찾아가 자신의 앞날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상담했다.

“선생님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최근 새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옳은 결정일까요? 이것 말고 다른 결정을 해야 했을까요?”

제자의 고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오래 전부터 만나던 여성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시점에서 결혼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더구나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 길러야 할 텐데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아이를 기를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자는 자신의 고민을 끝도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제자의 고민 중에 아무것에도 대답하지 않고, 제자의 찻잔에 차만 따라주고 있었다. 한참을 떠들던 제자가 뭔가 대답을 원하며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찻잔에 차만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찻잔에 차가 가득 담겼는데도, 차를 따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잔에서 차가 흘러넘쳐 바닥을 적실 지경이 되자 제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차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제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찻잔이 바로 자네의 마음과 같아 보이네. 그리고 흘러넘치는 차가 자네의 고민이네. 지금 자네의 마음에 너무나 많은 것이 꽉 차 있으니 내가 어떤 조언을 해도 들어갈 <여유>가 없어 보이네. 그 마음의 잔을 비우고 그때 다시 나를 찾아오게나”

그렇다. <여유>가 없는 좁은 길에 여러 대의 차가 한꺼번에 지나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심한 교통체증이 벌어지고,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사고도 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온통 근심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담을 <여유> 공간이 없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가정과 교회을 운영해 가는데, 은혜 충만한 감사와 넉넉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소망해 본다.

스페인의 철학자이며, 작가이고, 예수회 신부였던 발타사르 그라시안(1601~1658)은 바쁘게 살아가는 위해서 "일은 쉬면서 인생은 <여유> 있게 보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은 바쁘게 산다고 해서 해복한 삶을 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일은 쉬면서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치지 않는다. 고민을 해결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여유 있는 인생을 보내야 한다. 마음에 고민이 가득차 있는데, 고민을 해결 할 수 있는 지혜를 담을 여유가 있겠는가.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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