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바울 목사.

한국교회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굳게 닫혔던 예배당이 1단계로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다시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 좌석 수의 30% 이내에 한해 대면예배를 허용한 것이기에, 아쉬움은 따르지만 이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코로나19의 확산과 재확산으로 인해 어느 집단보다도 큰 피해를 입었다. 6.25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예배가 불청객으로 인해 멈추게 됐고, 그 과정에서 예배를 지켰던 몇몇 교회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질타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마치 신천지 집단처럼 비춰지기도 했으며, 일부 강성(?) 목회자로 인해 한국교회 전체가 싸잡아 손가락질을 당하는 처지에도 놓였다. 이처럼 한국교회를 향한 이미지 실추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마치 죄인이라도 된 마냥 한국교회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고통과 아픔은 어찌 보면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져, 화합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따끔한 채찍이었는지 모른다. 또 잠깐 잊어버렸던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더욱 낮은 자의 심정으로 돌보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을 되새기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이유라도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이 기회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 본질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마치 대청소를 하듯이 지저분하고 더럽고 어둡고 침침한 곳을 말끔하게 씻어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몸은 여러 개로 나뉘어 있으되, 마음은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다. 솔직히 한국교회는 무한한 성장을 하면서 세계적 모범교회로 인정받았지만,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듯이 분열과 갈등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더욱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단체들마저 사분오열로 쪼개져 대사회적 문제에 대해 하나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서로 자신이 정통성(?)이 있다고 외치는데 혈안이 되어, 본질은 뒷전이었다. 이는 곧 한국교회의 신뢰도 추락을 불어왔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가 대사회적 문제에 대해 하나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든지, 사립학교법 개정, 낙태죄 개정 등 굵직한 이슈들은 어쩌면 한국교회가 하나 되기 위한 과제일지 모른다.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여러 가지 위협 요소 앞에서 더 이상 진보와 보수, 정치적 유익은 의미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나눔과 섬김에 더욱 매진하길 소망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로 예배가 어렵게 되자 교회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나눔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의 종교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아쉬움이 따랐다. 물론 부목사들 월급마저도 줄 수 없는 지경에 처한 교회들이 수도 없지만, 소외된 이웃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나서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누가 잡아줄까. 한국교회의 이미지 쇄신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향한 대가 없는, 아낌없는 나눔과 실천, 돌봄이 넘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누군가는 한국교회가 코로나19로 인해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전자보다는 후자의 이야기가 옳다고 본다. 한국교회는 분명 130년 역사 속에서 올해만큼은 예배마저 멈출 정도로 크게 성장통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다. 이제 한국교회가 과거의 잘못을 모두 회개하고, 개혁과 갱신으로 깨어나 성숙한 자세로 하나님 나라 건설에 매진하길 소망한다.

예장 호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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