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고 현 목사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平安) 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 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사람에게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역경이 찾아온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다. 닥쳐오는 역경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사람이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어느 시골에서 자란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을 수확기만 되면, 늙은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새참 준비를 했다. 음식이 가득 담긴 넓적한 쟁반을 머리에 이고 나서면,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일하고 있던 한 남자가 얼른 여자 의 쟁반을 받아 준다.

여자는 수줍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그저 맛있는 반찬 몇 가지를 그 남자의 곁으로 밀어주었다. 이 여자는 이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어설프게 표현했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하얗게 웃었다. 여자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얼른 자리를 피하면 동네 어른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뭘 그렇게 망설여, 둘이 잘 어울리는구만”

이 말에 여자도, 남자도 얼굴이 빨개져서,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진다. 그렇게 남자의 마음을 모른 채, 혼자서 속을 태우고 있을 때, 6.25전쟁(戰爭)이 일어났다. 그 남자 역시 징병모집 대상이었다. 어느 날 늦은 시간 남자가 여자를 조용히 불러냈다.

“숙희씨. 잠깐 나와 보십시요.”

유난히 빛나던 달이 이들의 이별을 짐작한 듯 슬퍼 보였다.

“저, 군대(軍隊) 갑니다.”

깜깜한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별들이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았다. 여자는 꾹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여자는 가슴이 메어서 엉엉 소리 내어울었다. 남자는 여자를 꼭 안아주었다. 서로 깊은 떨림을 느꼈다. 이제야 서로 마음을 주고받았다. 서로 사랑을 확인했다.

“숙희씨, 저는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저는 꼭 살아서 돌아 오겠습니다.”

6,25전쟁으로 온 나라는 폐허가 되었다. 생계가 어려울 때, 여자의 몸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뱃속에서는, 이들의 새 생명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온통 나라가 잿더미가 된 전쟁터에서 남자는 삶과 죽음이 교차했다. 정장에서 남자는 자신을 지켰고, 여자 역시 아이를 지켰다. 어느 날 여자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를 보면서 피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1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남자가 전쟁 중 다쳐서 치료 중이라는 평지 한통이 도착했다. 병문안을 오라는 편지였다.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남자의 다리 한쪽이 없었다. 목발을 짚고 전역을 한 남자는 품에 안긴 아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가는 동안 이들에게는 이쁜딸도 생겼다. 이 가족은 가난하지만 고맙게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봄날 남자는 전쟁의 상처 휴유증으로 가족 곁을 떠났다. 여자에게 첫 고백을 하던 그 날의 그 음성처럼 힘겹게 여자의 귀에 대고 남자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여보, 수많은 <역경>의 세월(歲月)을 함께 해 주어 고맙소.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납시다.”

한교연 총무협 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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