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성경은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갈등을 봉합하고, 분열을 하나로 만든다. 고린도전서 13장4-7절에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이하생략)”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벌였다. 이들이 있는 역사의 현장은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과 나누고, 생명의 떡을 먹고 나누는 밥상공동체였다. 그래서 기독교를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 나눔의 종교라고 말한다.

시리아를 거쳐 로마로 간 기독교회는 간난한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초대교회 역시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가지고 나와 생활에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생활공동체였다. 요한복음 13장34절에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 우편물 집배원이 달동네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었다. 어느 날, 허름한 집 앞에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어 오토바이를 세운 뒤 종이를 살펴보니 수도계량기 검침용지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달 수도 사용량보다, 무려 다섯 배나 많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마음씨 착한 집배 원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할머니, 수도 검침 용지를 보니까 아무래도 수도관이 새는 것 같아서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 지난달부터 함께 사는 식구가 늘어서 많이 나왔나 보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외롭게 혼자 살던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고 의지할 데 없는 노인 몇 분 을 보살피며 같이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그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고, 빨래도 해야 해서 이번 달 수도 사용량이 유난히 많이 나왔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집배원은 점심시간마다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팔을 걷어붙이고, 할머니를 도와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했다.

“좀 쉬었다 하구려, 젊은 사람이 기특하기도 하지.”

“네, 할머니! 내일 점심시간에 또 올게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고, 여느 날처럼 집배원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그 집에 도착했는데, 깜짝 놀랐다. 대문 앞에 오토바이 세대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동료들이 그를 반겼다.

“어서 오게. 자네가 점심시간마다 안 보여서... 이렇게 좋은 일을 혼자서만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앞으로 는 우리에게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눔>의 기회를 주게.”

 그렇다. 남(他)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나눔>의 향기를 뿌릴 때,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 작은 민들레 홀씨가, 퍼져서 민들레밭을 이루듯, 우리의 <나눔>도, 곳곳에 퍼져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따뜻해질 수 있도록 모두가 소망해 보자. 나눔은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 그의 마음으로 흘러 생명수가 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존 포웰은 “기쁜 일은 서로의 <나눔>을 통해 두 배로 늘어나고 힘든 일 은 함께 주고받음으로써 반으로 즐어든다”고 했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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