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추수의 계절, 감사의 계절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11월 셋째 주일을 감사절로 지켰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11월 추수의 계절, 감사의 계절이 과거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만큼 생활이 풍부해졌다는 말이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감사절만큼 큰 절기가 없었다. 교회에서도 추수감사절만큼 기다려지는 절기도 없었다. 감사절은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는 축제이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재에 있는 오늘날 세계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 그렇다보니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거워했던 감사절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고, 이미 퇴색됐다. 처음 성서에 나타난 감사절은, 처음 소출된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다. 신명기는 이 물질을 레위인, 고아, 과부 등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 이들과 나누라는데 있다.

고대 이스라엘민족의 감사절은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거워했다. 그런데 함께 즐거워해야 할 축제, 감사절의 자연성은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자연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인위적인 이벤트성 축제만 보인다. 감사절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이는 가을 축제를 보면, 그것은 더욱 극명해진다. 예수님은 민심이 흉흉하고,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니던 시대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다.

예수님은 먹을 것이 없는 상황, 굶주림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제의적 기적을 일으켰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생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오늘날 기득권을 옹호하는 국회의원들의 정책과 법 발의는 기득권자들을 옹호하는 정책이며, 법이다. 이것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정의당도 마찬가지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는데 안타깝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저 포지션만 바뀌었을 뿐, 90%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데 소홀하다. 그것이 선진국이라며 자위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문 정부 5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국민의 힘 등 정치권 모두가 10%의 기득권자들을 위한 정당이 되어버렸다. 여야 모두가 10% 기득권자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아우성친다. 모두가 물질에 눈이 어두워, 제의적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겠다는 정치인들의 물질적 승화는 함께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진자들이 더 가지면 살아가는 불합리한 세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의 승화는 차별 없는 세금과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의 복지를 통한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국민이 내는 세금, 물질은 공동체의 번영과 삶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의 소유 확대는 억제하기 힘들다. 기득권자 10%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말하는 정치지도자, 이들을 위해서 불철주야로 뛰는 목사와 장로는 한마디로 한심하다, 교회가 언제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회 한번 드려보았는가. 진정 가난한 자들의 손이라도 잡아주면 눈물 흘리며 기도해주었냐 말이다.

2021년 한국교회는 풍성한 감사의 계절, 추수의 계절을 보내자. 풍성한 감사절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모두 함께 모이고, 함께 나누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에서 감사절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감사절은 결코 특정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가 풍족하게 누리며,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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