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된 마음으로 하나님 기다리자

성탄의 계절, 대림절이 시작됐다. 모두가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오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재물과 돈에 취한 인간들을 보면,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보이지를 않는다. 성지로 불리던 종로5가는 재물과 돈에 취한 목사·장로들로 인해 범죄자의 소굴이 되었으며, 쓰레기 하치장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교회나, 정치권이나, 사회나, 모두 썩은 악취가 진동한다. 모두가 생명의 양식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대림절이 시작된 12, 이런 상태로는 하나님을 기다릴 수 없다. 곳곳에서 죽임당하는 아이들과 노동현장에서 사고로 죽임당하는 노동자들의 한의 소리는 하늘에 사무친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은 세계민족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곤궁한 자영업자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장도 있다. 바이러스도 요술을 부린다. 델타변이바이러스의 공포를 넘어 더 강력한 오미크론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불안하게 만든다.

대림절, 성탄의 계절, 하나님을 기다리는 인류 모두는 곤궁하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자영업자들은 가게의 문을 닫고, 노숙자와 어르신에게 희망이었던 밥상공동체는 문을 걸어 잠갔다. 모두가 힘든 대림절, 성탄의 계절, 겨울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극명해진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했고,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도 울린다. 하지만 사랑의 온도계는 좀처럼 올라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성탄절은 모두가 즐거워하고, 함께 나누며, 다시 오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성탄절이 인류 모두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게 이웃을 사랑하는 종교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음악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세상 사람들은 술과 환락 속에서 본능을 발산하는 성탄절로 착각하며, 신종바이러스감염증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매일 신종바이러스감염증 확진자는 늘어나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이런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을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서 맞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성탄절의 뜻을 되새기며,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다려야 한다.

대림절, 하나님을 기다리며 하나님 나라 대망하자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 구원과 해방의 기쁨 전하자

자유인은 성탄절을 기다린다

성경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동정녀 탄생’, ‘예수라는 이름’, ‘임마누엘등 중요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미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즉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인류에게 가져다가 주었다.

억압과 수탈의 체제 속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가 열리지 않는다. 미래가 없다. 소망도 없다. 본능과 습관의 굴레에서 소망 없는 삶을 이어간다. 불의와 거짓의 토대 위에서 혼자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그리고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혼란과 혼동만을 준다. 이것이 오늘 교회지도자, 정치지도자의 모습이다.

전 한신대 교수 박재순 목사는 자신의 저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1988, 도서출판 천지)에서 구원은 주어진 체제 밖에서, 본능과 습관의 굴레를 벗어날 때 비로소 열린다. 불의와 거짓의 토대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메시아사상이 나올 수 없다고 밝혔다.

억압과 수탈의 체제서 해방돼, 닫쳐진 사회, 닫쳐진 역사를 연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밖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예수(여호수아)는 히브리어로 구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담겨져 있다.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 할 것이라고 한다. 예수의 이름은 그 자체로 그의 백성과 결부되어 있다. 백성의 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가장 큰 죄는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죄이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죄가 크다. 모두가 성령을 잃어버려 나의 마음에서 너의 마음, 그의 마음으로 성령이 흐르지 않는다. 고인물이 섞듯이 인간의 마음,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성령이 흐르지 않아 고인물과 같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돌멩이가 되어 버렸다. 죽어가는 노동자를 보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가 사랑을 잃어버렸다. 생명의 양식을 잃어버렸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불교는 개인의 수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유교 역시 가진자들의 도덕성을 중요시 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철저하게 나를 넘어 너와 그에게 맞추어져 있다. 한마디로 인류 모두를 위한 종교이다. 때문에 인류 모두가 성탄절을 기다리고, 다시 오시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정화된 마음으로 기다린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것은 율법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비루들과 계약을 맺었다. 자유인은 정의와 사랑으로 통치 할 수 있다. 하지만 노예로 산 사람은 자유, 정의, 사랑으로 통치 할 수 없다. 이들을 강제적으로 통치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율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거부하지 말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은 성숙한 사람을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로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눈이 멀어, 귀가 어두워 성숙한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를 볼 수 없다. 대통영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후보 모두가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답으로 착각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이들은 인간사회를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인생은 답이 없다. 신앙생활도 답이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답이다. .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과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이라고 착각하는 그리스도인, 권력을 가진 관료, 이들과 악어와 악어새가 되어버린 언론인들에게 정의로 오신, 앞으로 오실 메시아가 필요하겠는가. 이들에게는 이들이 그토록 찬양한 파쇼가 필요하다. 이들 중에는 국민을 살해한 전직 대통령을 찬양한다. 어떤 후보의 참모는 일제 36년을 정당화시킨다. 가난한 자를 비하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정답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들의 행동이나, 가족의 내력을 보면, 범죄 집단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그리스도인에게 역사의식은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과 종교인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이들은 자유인으로서의 자유를 저버렸다. 그래서 성탄절을 기다리는 사람은 자유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사랑과 정의 공동체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고발하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과 수탈을 일삼으며, 거짓과 불의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스스로 거부했다. 불의한 왕이나, 지배계층의 억압과 수탈 속에 신음하거나, 나라를 잃고 이민족의 압제 속에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개인적인 죄 때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죄를 지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사랑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살았다. 결국 목자 잃은 양떼가 되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을 교육했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삶의 현장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통치한다. 이 같은 사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웃나라의 침략에도, 한 번도 하나님의 의한 직접통치를 잊은 적이 없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을 대한민국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면, 하나님은 북한민족의 하나님이며,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그래서 세계민족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그의 나라를 갈망하며, 그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오늘날 세계는 힘에 의해 하나님의 질서가 파괴되고, 가진자들에 의해 불의와 거짓이 판치고 있다. 모두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생명의 양식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 가져다가 준 평등한 세상에서 이탈한 것이다. 자신의 말이 정답으로 생각한다. 유튜브를 통해 아무렇지 않게 짓 거린다. 신앙은 답이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위선적인 신앙과 사회의 술과 환락으로는 다시 오실 아기예수를 맞이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으로부터 거지로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어떤 어린이가 예수님이 오신다고 해서 정성껏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밤새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지 않고, 거지와 처량한 노인, 장애인만 왔다가 갔다.

아이는 거지와 노인, 장애인을 매몰차게 내쳤다. 이 아는 왜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지 않고, 거지와 처량한 노인과 장애인만 오냐고 땡깡을 부렸다. 이 때 예수님이 나타났다. 3번이나 너를 찾아 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 대림절, 성탄의 계절 마음을 가다듬고 예수님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대림절, 성탄의 계절에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린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계를 직접 통치 할 때, 억압과 착취, 불의와 거짓이 사라지고 평등한 세상이 온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재물과 돈에 취해, 귀가 막혀,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을 몰각했다.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가 없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을 일삼는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 정신을 잃어버렸다. 임마누엘은 로마 등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침략 앞에서 나온 희망의 메시지이다. 1천년동안 나라 잃고, 주변 강대국의 지배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 고난과 시련을 겪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마누엘의 현실로서 그리스도가 탄생했다. 기다리는 아기 예수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평화의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국민 모두는 소망해 본다.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하지만 생명의 양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여전히 술과 환락으로 국민들에게 혼란과 혼동을 주고 있다.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자.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자. 정화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자. 정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있다는 평신도 신학자 허버트의 말을 귀담아 듣자.

2021년도 대림절, 성탄절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실의에 빠진 사람과 항상 죽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 보다 낳은 삶을 위해 조국을 떠나는 이주민,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약소국가 국민들에게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되도록 모두가 노력하자. 그리고 굳게 닫쳐진 사회, 정의가 실종된 사회, 상처투성이인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 구원과 해방을 가져오는 메시아의 탄생은 해산의 고통만큼이나 아픔을 동반한다는 것을 깨닫자,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는 해산의 고통만큼이나 어려운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을 기다리자. 이것은 그리스도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참여하는 것이다. 2021년 하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 성탄의 계절에 신종바이러스감염증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보자.

동자동 쪽방촌에 민족사랑교회를 세워놓고,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 곤궁하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일하는 임호성 목사를 보라. 마포 한 귀퉁이에 교회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장헌일 목사를 보라.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일하는 목사들을 보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외에서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사를 보라,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봉사하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을 보라.

이들은 돈에 취해, 물질에 취해 용인과 장위동을 왔다 갔다 하며, 이중적인 행동을 보이는 모 단체의 목사들과는 다르지 않는가. 용인과 장위동을 왔다갔다 하는 모 단체의 목사들은 분명 예수의 길, 그리스도인의 길, 십자가의 길에서 이탈했다. 이들은 생명의 양식을 잃어버렸다. 종로5가를 범죄 집단,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들고 있다. 교인들에게 혼란과 혼동의 고통을 주고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화된 마음으로 대림절, 하나님을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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