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한 짧은 보고서

사는 일이 그냥
숨 쉬는 일이라는
이 낡은 
생각의 역사에 
방금 도착했다

평생이 걸렸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아직도 여전히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간간이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할 때도 있다. 밤에 산책을 나가면 아파트 주변 풀밭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곤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지열이 올라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가 어느새 숨이 차오르면서 훅- 덥기도 하다. 올 한 해 여행길이 8부 능선을 넘어간다. 연두의 파릇한 새순을 지나고, 아카시아 하얀 향기 흩날리는 초록 잎새를 넘어, 다홍의 능소화 꽃잎들이 흐느적거리는 계절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계四季의 그 무엇 하나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바람을 불어오게 하시고 햇빛을 보내며, 때대로 늦은 비와 이른 비를 주시는 오직 한 분의 힘으로 가능한 것임을 묵상한다. 시인은 삶을 여행에 비유하여 촌철살인의 시를 지었다. 이런 짧은 시일수록 쓰기가 쉽지 않다. 원래 시가 지닌 형식적 특징이 짧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함축과 절제의 미에 집중해야 한다. 대개 아포리즘적인 시에는 삶에 대한 시인의 경륜이 녹아 들어 있다. 

“사는 일이 그냥/숨 쉬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을까. 시적 화자는 그 답을 한 행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연에서 밝혔다. 즉 평생이 걸렸다는 것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이 낡은/생각의 역사”이다. 수식어“낡은”에 반전의 묘미가 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아무리 수행을 오래 하더라도 도달하기 쉽지 않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를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첫 두 행의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을“낡은”이라는 수식어를 선택함으로써 발상의 전환을 환기한다. 

시「여행에 대한 짧은 보고서」를 통해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먹구름이 몰려 왔고 천둥과 번개가 쳤던, 때론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불었던 인생길을 뒤돌아보게 된다. 길지만 길지 않고, 짧지만 짧지 않은 여정에서 이런 간이역에 도착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여호와이시다(욥기1:21)는 욥의 고백이 떠 오른다. 우리는 이 세상 여행길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간다.‘메멘토 모리’를 생각하며 잘 숨 쉬며 살아가는 길을 찾고 싶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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