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환 목사
김 명 환 목사

사람은 누구나 누구인가의 종이 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갈라시아서 9장에서 율법과 복음의 다른 점을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중략)/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갈라디아서 9장1-15절)

갈라디아서는 기독교인 자유의 헌장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인간을 자유케 한다. 갈라디아서는 기독교인의 자유를 열파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구원의 선결조건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다. 갈라디아서는 유대인들의 규율인 할례를 수용한다.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교회에 침투해 할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인다. 바울은 “할례는 당장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할례는 율법에 이르는 의식이다. 바울은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할례는 빋음을 견고하게 한다며, 율법주의자들과의 논쟁을 피한다. 당시 할례는 종의 멍에는 다시 메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유대교회의 세계, 율접이 지배하는 시대에 예수님은 율법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행했다. 그것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행위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주워먹는 행위, 정결법을 어기는 행위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면, 자기모순에 ᄈᆞ진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은 안식을 선하신 하나님과 연관시켜 말한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마태복음 12장9-12절)
문제는 오늘 한국교회는 복음을 율법처럼 해석한다는데 있다. 한국교회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해 노동자들을 쉬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보니 노동자들은 수는 날이 없다. 장마철이 시작됐다. 집중 호우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답시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수해복구를 지시한다. 

분명한 것은 수해복구를 위해서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사람은 청소 노동자이다. 교회는 이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교회가 수해복구를 위해서 나섰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수해 현장에서 할 일이 없다. 정부는 부자들의 세금을 깍아주기에 바쁘다. 부자들의 자녀를 적재적소에 심기에 바쁘다.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는 수재현장에서 “사진 잘 나오게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농담한다. 

이것이 바로 높은 자리에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집중호우로 고통을 당하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들은 농담 따먹기나 한다. 낮은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믿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낮아질 때 이 사회는 건강해진다는 사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온다. 성령으로부터 나온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이 공동체를 위해서 준 선물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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