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

나팔꽃 새순 돋아 허공에서 길 찾는 거 보셨수?
뾰족한 끄트머리가 아침 이슬 어루만지는 거 참 신기하쥬?
아직 눈 안 뜬 두 이레 강아지 꼬물거리는 거 보셨수?
보드랍고 연하고 따뜻하쥬?
당신 손녀딸 애깃적 젖니 돋아나는 거 보셨수?
말랑한 얼굴에 하얀 이 돋아 방긋 웃는 거 참 이쁘쥬?
그 애기 좀더 커서 벚꽃 잎 하르르 흩어져 떨어지는 거 보면서
춤추는 발레리나 같다고 말하는 거 보면 짜릿하쥬?
그게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이유.
자고 깨면 사람들은 전염병 걱정으로 가득 차
입 가리고 코 가리고 서로 경계하고 눈치 보며 피할 때
집에 일찍 들어가 
당신 마누라 작고 못생긴 발 씻겨줘 보슈.
가슴 한 구석에 애틋하고 아릿한 덩어리가 느껴지쥬?
그게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이유.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인물 사진을 잘 찍는 예술가로 알려진 조세현 작가는 잠시 뒤를 돌아보며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행복을 발견하라고 한다. 살면서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는 게 여간 쉽지 않다. 모두가 앞으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 앞만 보고 달리다가 한두 번 넘어져 다치게 되면 그제서야 호흡을 가다듬고 지난날을 돌아다보게 된다. 멈추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와 만나게 된다. 그때 놓치고 지나갔던 소중한 것들이 다가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조시인은 우리가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에 대하여 친절하게, 재미있는 충청도 방언으로 안내해 준다. 사는 것이 참 막막하고 앞이 캄캄할 때가 적지 않다. 특히 여전히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함께 살고 있다. 시인이 일러주는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거창한 게 아니다.“나팔꽃 새순 돋아 허공에서 길 찾는 거, 아직 눈 안 뜬 두 이레 강아지 꼬물거리는 거, 손녀딸 애깃적 젖니 돋아나는 거”등등. 어쩌면 별 거 아닌 걸로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삶의 빛나는 보석이다. 

 시의 후반부에서 시적 화자는 “당신 마누라 작고 못생긴 발”을 씻겨 보라고 한다. 살면서 배우자의 발을 씻겨 본 적이 있던가. 손이나 얼굴도 씻기기 힘든데 그것도 발이라니. 하루 종일 고단하게 몸을 끌고 다닌 발에는 땀냄새가 배여 있다. 몸의 가장 낮은 부위이자 고약한 냄새가 나는 부위를 씻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평생을 동고동락해 온 아내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하다. 만약 실천할 수 있다면 감동 그 자체일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을 떠 올리니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이제부터 가까이 소소한 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마음을 씻고 나서 식구들의 발을 씻길 만큼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그늘에서 양지바른 곳으로 이끌어 내는 힘, 그게 바로 시의 눈부신 에너지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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