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아 하나의 교회를 생각한다. 오늘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종교의 정치적 참여와 정교분리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특히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같은 시각은 분명 일제의 잔재이며, 선교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산물에서 비롯됐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에서 선교사들이 정치는 총독부가, 교육과 선교는 교회가 감당 한다는 내용의 정교분리정책을 총독부에 제시하면서, 정교분리는 우리사회에 뿌리가 고착화됐다.

정교분리정책은 기독교를 비롯한 불교, 천도교의 독립운동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총독부의 정책과 선교사들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다. 정교분리정책 시행이후 선교사들은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막았으며, 독립운동에 가담한 교인들을 교회에서 출교시켰다. 당시나, 오늘이나, 미국은 일본의 입장에 서 있었다. 식민지 피압박 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처사이다.

영미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도 보수적인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예언자 전통에 따라 잘못된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낸 목회자들을 향해 정치목사로 규정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고난당하는 학생, 노동자, 빈민 등을 외면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통일을 이야기 하는 목회자와 교인들을 좌파’, ‘용공분자로 매도했다.

통일은 정부의 점유물로 여겼다. 통일을 말하는 국민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 감옥에 가두었다. 대신 이들은 피 묻은 손 위에 기도해 주는 잘못을 범했다.

이들이 바로 조찬기도회를 주도한 정치목사이다. 오늘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여기에다 교회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정치가 종교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존 로크의 정교분리를 앞세워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영미 교파주의, 보수신앙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정책을 따르는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않고 있다. 4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독교정당의 이름으로 후보를 냈지만, 국회 입성에는 실패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는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예수님도 정치법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로마시대와 중세시대의 기독교는 정치와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었다. 기독교는 정치와 결탁되면서,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면서, 기독교는 크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중세에 와서 종교 간의 갈등과 분파주의로 인해 국민들의 혼란과 고통은 가중되었고, 이 때 종교들 사이에서, 종교적 관용, 정치적 관용,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크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일어났다.

중세시대 최고의 신을 경외하고, 최고의 신을 찾아 나선 이들이 있었다. 최고의 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단 간에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고의 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들이 바로 중세시대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허버트. 홉즈, 존 로크, 아담스미스 등 이신론자들이다. 이들은 한 분의 신을 믿으며, 하나님을 경외했다.

세속적인 소유에 길들여진 한국교회의 최고 가치는
한기총 임원과 교단지도자들 돈의 흐름 감지능력 뛰어나
한국교회 이단보다도 돈을 좋아하는 사이비가 더 큰 문제

한 하나님을 경외, 분열될 이유 없다

홉즈와 존 로크는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내 놓았다. 홉즈의 국가종교와 존 로크의 정교분리 모두 국가로부터의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내놓은 학설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홉즈는 각 종파의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종교에 깊숙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며, 존 로크의 정교분리는 종파간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종교적 갈등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계시종교인 기독교는 시간이 경과하는 과정에서, 교권주의자에 의해 제도화되고, 교리화 되어 교회적,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고, 일으키고 있다. 종교는 역사적 과정에서 항상 성경의 진리를 거역하며, 분열과 갈등을 일삼았다. 이는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기독교를 연구하는 사람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대안으로 홉즈는 국가종교를, 존 로크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이 두 대안은 모두 종교를 보호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분열과 갈등을 일삼는 군상들은 이를 악용해 왔고, 악용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계속해서 종교적 갈등을 일으키며, 분열되어 왔다. 오늘 한국교회는 400여개의 교단이 공존하며, 교리다툼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 선교 130년은 한마디로 분열의 역사이다. 이들에게서 종교적 관용, 정치적 관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데 안타깝다.

하나의 교회, 연합과 일치를 표방하며, 창립된 기독교연합단체들 마저도, 파벌을 조성하며, 교회를 혼란에, 교인들을 고통에 빠트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한 하나님, 같은 신앙고백,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곡조의 찬송가를 부르면서, 분열될 이유가 전혀 없다. 한국교회는 일제 말 조선기독교라는 간판아래 하나가 된 적이 있다. 일제하에서 부자교단에 의해 성경도, 찬송가도, 공과도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는 해방 후 교단분열과 함께 심화됐다.

홉즈는 종교 간의 평화는 자연적, 이성적 원종교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국가종교를 발전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국가종교론을 펼쳤다. 한마디로 국가권력이 종교의 권력을 장악해야만, 다양한 방향을 가진 교파들 사이의 분열과 다툼을 통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홉즈의 국가종교론은 그의 인간관에 기원을 두고 있다.

즉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나가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유일한 수단은 국가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대립, 성직자를 국가의 통제 하에 두어야만, 종교의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종교의 종파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종교제도를 주장했다. 한마디로 종교적 갈등의 해결책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것에서 최상의 것을 찾으려고 했다.

교회 분열은 혼란과 고통만을

그러나 영미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린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종교를 국가의 통제아래 둔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교파주의에 매몰된 군상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제도화, 교리화시켜 그 뒤에 숨어 한국교회를 혼란과 고통에 빠트리고 있다.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때문에 국민들은 교회를 믿지 않는다. 터부시하며, 기독교를 사이비로 규정하고, 목사를 사이비 목사라고 아무렇지 않게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안수를 받은 목회자들은 자신을 목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는다. ‘박사라고 부르라고 주문한다. 사업하는 목사는 이제부터 목사라고 부르지 말고, 사장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누가, 누구를 이단, 삼단으로 규정 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됐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는 이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이비의 문제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배진구 목사는 역사적 과정에서 진리를 거역하는 한기총을 개인의 욕심을 챙기는 자들 때문에 오늘 한기총이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면서, “오늘 한기총은 교리해설이나, 성경해석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는 한기총의 인사들이 문제이다.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없는 자가 바로 이단이다고 비기독교인인 임시대표회장을 겨냥했다.

배 목사의 말대로 한기총은 오늘 한국교회에 혼란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한기총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이다. 한기총은 10년 넘게 역사적, 정치적으로 혼란과 고통만을 한국교회에 안겨주었다. 처음 출발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한기총이 정치화되면서,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고, 대표회장 선거 때마다 대선이나, 총선에서도 볼 수 없는 전의 전쟁을 일으켰다. 문제는 한기총의 대의원 대부분이 교단의 책임자이고, 지도자라는데,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이들을 믿고,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 같은 형태는 비단 한기총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부자교회 목사는 여당과 야당에 줄을 대고 이중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분열된 연합단체, 부자단체는 이들을 통해 정부로부터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받는다. 지원받지 못하는 단체는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모두가 신에 대한 두려움을 몰각했다.

신의 두려움을 상실한 교회지도자

홉즈는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자연적 상태가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으로 발전된 형태라고 말한다. 홉즈의 이 같은 주장은 중세 평신도신학자들이 자연적 상태에서 최고의 신을 찾으려고 했던 것과는 다르다. 초기 인간의 종교는 자연현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산물이었다. 이들은 초자연적 신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다.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은 원종교의 뿌리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살아계신 한 분의 신을 증명하는데 몰두했다. 국가종교론을 주장한 신학자들은 마음의 정화를 경험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음성, 계시를 감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음의 정화는 성도의 거룩성, 진실성, 근면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 오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연합단체의 군상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에게는 돈이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 돈을 쫓아다니며, 교회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전의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한기총에 소속된 임원과 교단의 지도자들을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고, 이를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발견 할 수 없다. 이들에 의해 한국교회는 질서가 무너졌다. 교인들은 고통과 혼란 속에 있다. 교인들은 한기총을 한국교회 대표적인보수연합단체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존 로크는 홉즈의 국가종교론에 대해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교파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종교 간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와 종교가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방법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종교적 갈등은 종교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는 미국 캐롤라이나 주의 헌법제정을 위탁받았고, 그가 만든 헌법은 1669년에 공포되었다. 이 헌법은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선언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 헌법은 모든 주민은 교파들 가운데 하나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7-8명이상의 구성원을 가지고 있을 때 종교단체는 교회로서 인정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회의 구성요건은 한분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은 공적으로 예배되며 정부가 요구할 때 주민들은 신앙고백을 할 의무가 있다. 이 조항에 따라 기독교를 받아드린 대부분 나라의 교회들은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하나가 되어 기도했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

존 로크 교회구성의 원리 제시

한국교회 역시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하며, 행동했다. 6,25전쟁 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본 식민지세력에 굴복, 신사참배에 적극 참여하는 등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일부 교회지도자와 사회지도자는 국민들을 향해 일본군 총알받이로, 정신대로, 징용으로 나갈 것을 연설하고 다녔다.

이들 중 일부는 북한의 남침 때도 김일성을 위한 기도회를 주도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평신도 교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장독대에서, 부뚜막에서, 골방에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나라와 민족의 해방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많은 평신도들이 일제하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식민지세력에 의해, 해방 후 신앙을 지키다가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남북한이 대치된 오늘의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한다.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평화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만, 이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 로마팍스, 아메리카팍스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평화, 샬롬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캐롤라이나 헌법은 어떤 사람도 종교적 집회를 방해받거나, 종교적 견해나, 예배 방식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즉 국가는 종교 활동에 일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오늘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존 로크의 정교분리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산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마저도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한 편지는 당시 종교들 사이의 커다란 사회적 방향을 일으켰다. 그는 이 편지에서 종교적 관용을 참종교의 가장 중요하고 특정적인 표식으로 간주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존 로크는 국가 또한 관용의 자세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이것을 게을리 하면 사회적 평화가 깨지고, 전쟁이 일어난다고도 적었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교리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킬 경우 전통적 교리를 피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는 분명 영생을 얻기 위해서 자기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신앙공동체이다. 교회법은 여기에 국한해서 제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앙과 신학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시민적이거나, 세속적인 것의 소유와 관련된 것을 지향하면, 그 공동체는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분열과 갈등이 만연하고 있는 것도 교회가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강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전의 전쟁 시작됐다

교회가 너무 부자가 되었다. 갈등과 분열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는 부자교회이다. 이들 교회의 목회자가 한국교회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교인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가난한 교인들은 교회를 떠난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그렇다보니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쁘다.

주류와 임시총회파(비주류측)로 갈라져 특정인물의 대리전을 벌이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에 소속된 인사들을 보면, 그것은 극명해진다. 양측을 지지하는 한기총의 임원들은, 오늘은 용인으로 달려가고, 내일은 장위동으로 달려간다. 돈이 있는 곳으로 몰려다닌다는 얘기다. 이들에게서 한기총이 하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적게는 몇 십 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 만원을 받으며, 오늘은 적이고, 내일은 동지가 된다.

이들은 세속적인 것의 소유에 길들여져 있는 군상들이다. 모두가 성경의 진리에서 이탈한 자들이다. 이들이 바로 교회 안에서 정의와 진리를 말하는 목회자들이다. 주류측으로 분류되는 어떤 인사는 주류측의 사람을 끌어오겠다면서, 비주류측에서 5000만원을 받아갔다. 그리고 3500만원을 쓰고, 1500만원 반납했다. 모교단의 총무는 주류측에 소속된 임원과 교단으로부터 서명을 받아오겠다며, 500만원을 받아갔다.

이 총무는 서명을 받을 수도, 서명운동에 참여 할 수도 없는 인사이다. 한기총에서 중책을 맡았던 모교단의 총회장은 용인과 장위동을 오고가며, 갈 때마다 100-500만원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개인적으로 사용한다. 이들이 바로 한기총을 고통과 무질서로 몰아넣는 자들이다.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배달사고도 일어난다. 지난 621일 한교총과의 통합을 위한 20221차 임시총회를 앞두고, 한기총의 임원 및 교단의 지도자들은 주류와 비주류 양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챙겼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군상들이다. 임시대표회장 역시 몇몇 교회의 목사로부터 작게는 500만원, 많게는 23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갈 때까지 간 한기총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최근 교계신문에 게재된 내용이 한기총의 임원 및 교계에 뿌려져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기사내용은 한마디로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를 나무라는 꼴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한기총 주류나, 비주류의 목사들은 누구도, 누가, 누구를 이단·삼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몰각한 처사이다.

여기에서 소외된 인사들은 불만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리전을 벌이는 한기총의 주류와 비주류는 임원들을 줄 세우기에 바쁘다. 아니 보다 많은 돈을 받기 위해 스스로 줄 서기에 바쁘다. 돈 때문에 동역자와 하루아침에 적이 된다. 이들을 목사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군상들을 보면, 한기총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다. 오직 이들의 가치는 돈이다.

이들이 바로 적대적의 관계를 조성하며,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적그리스도이다. 이들이 회개 없이 개혁과 갱신, 변화를 외치는 자들이다. 이 같은 형태로는 새로운 나라, 새 내일로 나갈 수 없다. 종교개혁 505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회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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