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의 발바닥

언제 갓 태어난 아기의 발바닥을 보았던가
희고 매끄러운 탄성,
핏줄 환히 들여다보이는 처녀지
주름 한 줄 없다
그늘 하나 없다

울면서 뻗치는 당찬 힘, 저 여린 발바닥 어디에
저런 단단한 항의가 서렸는지
거친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지녔던지
어미의 보호벽을 뚫고 나온
어린 전사의 발바닥을 쓰다듬어 본다

다섯 개 발가락마다 말간 핏줄거울을 달고
지구의 새 역사를 걸으려 하는
먼 우주로부터 날아든 별 하나
거대한 코끼리 발바닥보다 더 야무지다

한 개인사가 가족의 역사가
거친 흙을 딛고 일어서는 힘으로
파란 핏줄이 선다
내뻗는 발힘으로 새 터가 다져진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시의 제목이 무척 도전적이다. 오랜만에 들어본‘전사’라는 단어에‘발바닥’이 연결되어 있다. 제목을 보고 나서 맨 먼저 떠 오른 단어가 천사였다. 천사라면 대개 천사의 날개나 천사의 눈동자가 생각이 난다. 그런데 천사가 아니라 ‘전사의 발바닥’이다.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한 시인데, 여지없이 상식을 무너뜨리고 낯선 세계로 이끈다. 신선한 제목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줄곧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시의 매력이 발산되는 지점이다. 

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남과 여가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이어서 결혼하기에 이른다. 요즘처럼 출산율이 저조한 시대에는 더욱이 귀한 생명이다. 그런 생명 탄생에 대한 예찬으로 시의 첫 문을 연다. 아기의 발바닥을“희고 매끄러운 탄성”,“핏줄 환히 들여다보이는 처녀지”로 표현한 상상력이 돌올하다. 지금까지 누구도 아기의 발바닥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 시를 읽는 묘미가 있다. 아울러 아기의 발바닥을 보면서 거기에 서린 “단단한 항의”를 캐내는 시선이 흥미롭다. 세상에 발을 디딘 첫 생명을 “지구의 새 역사를 걸으려 하는/먼 우주로부터 날아든 별 하나”로 함축한 대목에서는 우주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새 생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왜냐하면 거기엔 “한 개인사가 가족의 역사가”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친 흙을 딛고 일어서는 힘으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그렇다. 전사라면 그렇게 파란 핏줄이 일어서는 그 발의 힘으로, 발바닥의 힘으로‘새 터’를 다져나가야 하리라. 어린 전사가 걸어가야 할 인생길에 어린 왕자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기를 희원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어린 왕자』)는 글귀가 귓전을 울린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마음 친구가 있다면 견딜만 할 것이니까.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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