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부근

앙상한 나뭇가지 끝
생바람 지나가는 풍경 차갑다
벌레 한 마리 울지 않는 침묵의 시간
물소리 오그라든 
얼음장 밑
숨죽인 겨울 적막 깊다
참고 더 기다려야 한다는 듯

햇살 쏟아지는 한낮
지붕 위 헌 눈 녹는 소리 가볍다
빈 들판 헛기침하며 건너오는 당신
반가워 문 열어보니
방금 도착한 편지처럼
찬 바람도 봄이다
애태울 일 다 지나갔다는 듯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새해, 새봄을 맞는 절기가 입춘이다. 이 무렵 남녘 마을에서는 소리 없는 봄 소식으로 붐빈다. 눈 머금은 동백 봉오리의 뺨이 발그스레해진다. 눈밭에서 슬몃 고개 내미는 복수초의 노랑 머리가 반갑기 그지없다. 유난히 혹한의 겨울이었지만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누가 있어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있겠는가. 오직 창조주의 손길로 이루어지는 신비스런 축복이다. 

시의 제목이「입춘 부근」이다. 지금이 바로 이 절기의 시작점이다. 아직도 여전히 나뭇가지는 앙상하다. 스치는 바람도 무척 차갑다. 그러니 주변 풍경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은“벌레 한 마리 울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만물이 꽁꽁 얼어 붙어“숨죽인 겨울 적막”이었다. 두터운 얼음장 아래 물소리마저 오그라들었다고 할 만큼 길고 추운 시간이었다. 

영하의 계절이 지나가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던가. 그런데 오매불망 기다렸던 만큼“햇살 쏟아지는”날이 마침내 다가왔다.“지붕 위 헌 눈 녹는 소리 가볍다”고 하니 봄이 가까이 왔나 보다. 다시 눈이 내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니 지붕 위에 있는 눈은 이미“헌 눈”이다. 아니“헌 눈”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 있다. 그 사이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빈 들판 헛기침하며 건너오는 당신”즉 봄이다. 홍시인만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난 봄에 대한 탁월한 비유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시인의 감각이 신선하다.“방금 도착한 편지처럼”봄은 우리에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바람이 차가울지라도 봄은 이미 곁에 와 있다. 시적 화자는“찬 바람도 봄이다”라고 단언한다. 마지막 행“애태울 일 다 지나갔다는 듯”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머문다. 마음 조리거나 애태울 일이 과거로 표현되는 동시에 직유로 마무리 된다. 애매모호한 여운을 남김으로써 시적 묘미가 살아난다. 기지개를 켜고 문을 활짝 열어 놓자. 봄이 마음껏 찾아오도록.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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