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속에 묻어두었던 뿌리가 
죽을 힘 다해 움을 틔워낼 때
그 움이라는 말

맵차던 지난겨울
스티로폼 박스에 갈무리 해 놓았던 대파
그 하얗고 탱탱한 속살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맵고 아리던 생의 기억 숨긴 채
샛노란 새싹 움 틔울 때
세상에 대하여 단단히 채비한 게 분명한 게다
 
움이라는 말
볕도 안 드는 음지에 밀쳐두었던 묵은 화분에서 
어느 날 노란 대파 줄기 쑥 올라올 때
뱃속의 아기가 첫울음으로 문 열어젖히듯 
첫 씨앗이 씨방을 찢고 나오듯
움이라는 말은 얼마나 힘세든가

묵은해를 빨리 버리고 싶었던 걸까
여기저기 새해 덕담이 소란스럽다

봄의 움은 태양의 힘으로 자라지만
겨울 움파는 묵은해의 기운으로 자란다
추운 겨울을 버티는 힘이란 
묵은해의 뿌리에서부터 오는 것
묵은해 뿌리의 매운 성깔로
세상을 당차게 밀고 갈 수 있는 것

움딸, 움쌀, 움집, 움짤, 움트다……,
존재만으로도 소소하고 따뜻한
움이라는 말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지금쯤 땅 아래는 매우 붐빌 것이다. 동면에 들었던 벌레들 꼼지락거릴 것이고, 나무 뿌리도 발끝을 까딱거릴 것이다. 아직 땅은 얼어 붙어 있지만 조금씩 해토 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속은 봄맞이 채비로 바쁘리라. 어디 나무나 풀, 채소 꽃만 그럴까. 동물들도 기지개를 켜고 겨드랑이 아래가 자꾸 간지러울 거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눈앞에 다가온다. 연두의 속도로 번져가는 봄의 기운이 차가운 바람결에 실려온다. 

움’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읽으면 입안에 옅은 진동이 생기면서 입술이 사르르 떨려온다. 시인이 시의 제목으로‘움’을 선택했다. 짧지만 임팩트가 있는 독특한 제목이다. ‘움’이라는 단어는 시 창작의 동기이자 제목이다. 시 전반에“움이라는 말”이 되풀이 됨으로써 경쾌한 리듬이 발생한다. 시적 화자는 첫 연“흙 속에 묻어두었던 뿌리가/죽을 힘 다해 움을 틔워낼 때/그 움이라는 말”로 시적 전개를 이끌어 간다. 이어서 ‘움’이 얼마나 힘이 센지를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첫울음으로 우렁차게 문 열어젖히듯”에 비유한다. 즉 추운 겨울 동안 움파에서“노란 대파 줄기 쑥 올라올 때”의 힘처럼 아주 세다고 한다. 그런데“봄의 움은 태양의 힘으로 자라지만/겨울 움파는 묵은해의 기운으로 자란다”는 절묘한 대구對句를 한다. 이런 대비를 통해 독자들에게 봄의 움과 겨울 움파의 움의 차이를 일러 준다. 특히“추운 겨울을 버티는 힘이란/묵은 뿌리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머문다. 그렇다. 이토록 추운 세상을 어찌 견디고 버텨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묵은 뿌리의 힘에서 나오는“매운 성깔”이 있어야 가능하다. 

움’이라는 말이 들어간 다채로운 단어들. 잠잠히 소리 내어 읽으면 몸에 움이 틀 것 같은 상큼한 착각이 든다.“움이라는 말”은“존재만으로도 소소하고 따뜻”하다는 시적 화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하여 아직 봄은 아니지만 이미 봄이 온 듯하다. 사람들의 마음밭에 인내의 움, 사랑의 움, 화해의 움이 트기를 기대해 본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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