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곡우穀雨댁이
밭둑에 앉아
젖을 물리고 있다

보채는
봄순이

파랗게 옹알이한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요즘처럼 비를 간절히 기다린 적 있던가. 곳곳에 산불이 발생해서 많은 인력이 동원되고 있다. TV를 켜기 전 혹시 오늘도 산불이 났으면 어쩌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이 앞선다.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턱 막힌다. 제발 비가 와야 할텐데... 기도가 절로 나온다. 

 기후 변화로 봄꽃들이 한꺼번에 활짝 피었다. 천지가 봄 꽃밭이다. 보기는 참 좋지만 순서대로 피면 얼마나 좋을까. 진달래 피고 나서 개나리 그다음에 목련, 이어서 벚꽃들이 눈부시게 공중을 수놓으면 좋으련만.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스스로 뉘우치곤 한다. 꽃보다는 사람이 먼저다. 사람들의 가슴에 꽃이 피려면 비가 와야 한다. 

 그래서‘곡우穀雨댁이’기다려진다. 그저 봄날의 낭만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곡우는 봄철에 있는 마지막 절기다. 봄날이 되면 농촌에서 농사 시기를 알리는 때다. 이즈음 봄비가 내리면 들녘에 있는 곡식들이 쑥쑥 자라나 주변이 윤택해 진다. 시인은 이런 곡우를 사람으로 상상해서 택호를“곡우穀雨댁”이라고 지었다. 참 기발한 창의력이다. 그다음 시행에서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밭둑에 앉아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밭에 내리는 비의 모습을 이토록 참신하게 표현한 시인이 있었을까. 

 시의 묘미는 읽을수록 배가된다.“보채는/봄순이//파랗게 옹알이한다//”소위 1연과 2,3연이 대구를 이루며 절묘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봄날 새순들이 파릇하게 돋아나는 모습을 신선한 이미지로 변주해 내는 시인의 역량이 돌올하다. 봄순이 보채며 파랗게 옹알이한다니 시각의 청각화가 탁월하다. 시를 읽는 동안 봄의 향긋한 내음이 자욱하다. 봄비라고 소리내어 자꾸 읽으면 비가 곧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루 빨리 비가 내려 마음 타는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 줄 수 있기를...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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