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택 목사
김 정 택 목사

 호흡이 불이 되어 살아남을 자가 없는 것 같으나 사 33:15-16에 있는 자들은 높은 곳에 거하게 된다는 것으로 호흡이 불이 되지 않는 곳으로 올라가 그곳에 하나님께서 양식과 물을 공급하여 살리신다는 것이고, 이들이 사 33:17에 영광중에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 한다는 것인데, 이는 예수께서 마 16:27에 영광으로 천사들과 오신다는 것이 왕이신 예수께서 오신다는 것이고, 이때 모든 것이 불에 타 없어졌기에 광활한 땅을 목도 하게 된다는 것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 패역하였던 땅을 불태우고 새롭게 하신 광활한 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는 사 33:18-19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고 그곳에는 사 33:20에 안전한 처소 새 예루살렘이 있고, 그곳이 절기(유월절)를 지키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절기는 애굽에서 나올 때 절기가 생겼고, 초림 때 절기가 생겼으며, 불에 타지 않고 살아남으면 마지막 절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섬겼던 절기가 아닐 뿐 아니라 오늘날 예수의 부활절도 아니요 우리가 부활하여 지키는 부활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도 이날이 올 것이라며, 눅 22:14-16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월절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세상 나라가 호흡이 불이 되고 나면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것이고, 이 절기를 지키는 성이 시온성이고, 이곳에 사 33:21에 하나님께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계 21:3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또한 요 14:23에도 예수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겠다는 것도 같은 말로써 우리가 지금은 영적으로 임마누엘이지만 그때는 진짜로 함께 사는 임마누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요 14:1-3에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으나 예수께서는 너희가 살 수 있는 곳을 마련하러 간다는 것이고, 거처가 마련되면 다시 와서 영접하여 데리고 가시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교회가 ‘다시 와서’라는 말씀의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비하는 처소는 우리가 부활해서 가는 나라로 호흡이 불이 되어 모두가 타서 죽고 난 후 부활하고, 변화 받아서 가는 나라를 말한다. 

  영혼이 가는 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이지만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나라는 누가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요 14:15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데리러 온다고 하였고, 요 14:21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이기에 그에게 다시 와서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고 있기에 ‘다시 와서’가 어떤 의미의 말씀인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요 14:23에 사랑하는 자와 거처를 함께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합동총회신학신대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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